길모퉁이 할머니 좌판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양손에 이것저것을 바리바리 들고 집으로 걸었다.
길모퉁이를 돌 때면 늘 마주치는 풍경이 몇군데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에 천막을 치고
뻥튀기와 옥수수빵을 파는 할머니.
박스 몇 개를 올려놓고 푸성귀와 과일을 파는 할머니.
코너 주택 앞에서 파라솔에 엉성한 비닐을 치고 붕어빵과 김치를 파는 할머니.
가게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엉성한 길거리 좌판이다.
꽈리고추를 한 바구니 사 들고 돌아와 펼쳐보면
싱싱한 것 속에 누렇거나 조금은 물러가는 고추가 섞여 있다.
그래도 나는 늘 그 가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할머니들의 손끝에 깃든 ‘오늘을 살아내는 힘’을
언젠가부터 존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병원을 갈 때마다 뭐라도 사 오려고 늘 현금을 챙겨간다.
할머니들은 대체로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지만
오늘도 스스로의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낸다.
몸이 굼떠 움직임이 느려도,
거리의 바람이 매섭게 불어도 낡은 파라솔 밑에서 그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은 흔들림이 없다.
삶이 주는 고단함을 견디는 방식이 분명하다.
오늘은 붕어빵을 굽는 할머니에게서 셀프 포장으로 김치 한 통을 샀다.
맛이 짭짤하거나 간이 강할 때도 있지만
문득, 그 맛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어쩌면 그 짠맛은 ‘시간’을 견뎌낸 할머니만의 맛일지도 모른다.
길모퉁이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의 가게 주변에는
늘 또 다른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마치 서로의 존재가 버팀목이 되어주는 듯한 풍경.
‘아, 사람은 결국 누구와 시간을 쓰는가가
그의 하루를 결정짓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물건의 상태로만 따지자면 그리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누런 고추 한두 개쯤 있다고 속상할 일도 아니다.
내가 그분들의 물건을 사는 이유는
늘 일정한 품질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 작은 자리에 깃든 삶의 태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배려라는 말은 사실
남을 위한 것보다 나를 위한 때가 더 많다.
행동을 하고 나서
내 마음이 평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향한 자책감이나 수치심을
불필요하게 끌어안지 않아도 되는
아주 단순하고도 분명한 방식.
김치 한 통 덕분에
두 손이 무거운 날이 많았지만
그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또 하나의 기쁨을 얻는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작은 선택을
내가 해냈다는 소소한 기쁨.
오늘도 그 길을 걸어오며 생각한다.
사람은 꼭 실용적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가끔은 ‘그냥’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일,
내세우지 않는 행동 하나가
우리의 하루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길모퉁이의 할머니들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하루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 길모퉁이를 지나는 마음 하나만큼은
흐트러뜨리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집에 와서 풀어보는 보따리 안에는
강냉이 한 봉과 옥수수빵 한 덩이, 고추 한 봉지, 김치 두통.
각기 다른 할머니들의 인생의 맛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