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2 먼 훗날 우리

2026. 1. 10.

by 미스 프레드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봤다.

원래 관심이 있던 영화였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만약에 우리'의 원작이라고 해서 짝꿍과 함께 보게 됐다.


영화를 다 보고 '와 영화 좋네. 잘 만들었다. 역시 듣던 대로 명작이야.'라며 짝꿍과 얘기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포인트에서 둘 다 엉엉 울어버렸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쿠키 영상 중 젠칭의 아버지가 샤오샤오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있다.

젠칭의 아버지는 노환으로 잘 보이지 않아 눈을 편지지에 바짝 붙여 한 자 한 자 샤오샤오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또 다른 포인트는 젠칭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는 독백이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몸 둘 바를 몰랐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쏟았다.


짝꿍의 아버지는 2023년 12월에 돌아가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에 가족들 모두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장례식이 내가 짝꿍의 아버지를 처음 본 장소였다.

아버님은 참 짝꿍과 닮으셨다.


영화가 끝나고 짝꿍이 부엌으로 잠시 가더니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왔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편지를 써준 적이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고...

짝꿍은 나랑 연애할 때도 아버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짝꿍이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짝꿍의 아버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 결과 가족들은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와야 했다.


우리 아빠도 나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2015년 11월, 나는 부모님 댁에서 독립해 서울로 이사 왔다.

그때 엄마, 아빠가 내 짐을 옮겨주셨다. 그때 아빠가 건넨 편지 하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여유가 없었다.

너희를 공포에 떨게 한 적도 많았는데 미안하다.

이제는 많이 웃고 살고 싶다.


나는 아빠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미워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했고, 또 걱정했다.

더 이상 아빠의 그늘에 살지 않아도 되자, 아빠를 더 이상 미워하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의 행동들을 용서할 수는 없다.

아빠는 자주,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이제 아프다.

내 결혼식이 있고 몇 주 뒤, 아빠는 미루고 미루다가 병원을 찾게 됐고,

육종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상황이 심각하며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찾아보니 많이 진행된 육종암의 경우 생존율이 30% 정도라고 한다.


아빠만 아니었다면 내 불안과 어둠의 반은 줄었을 거라며 아빠가 내 인생에서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다.

아빠가 정말, 진짜로 내 인생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난다.

아빠는 암수술을 위해 항암을 시작했고 다행히 경과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아직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다.


이 영화를 보니 아빠의 편지가 생각난다.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아빠의 평소 말투가 고대로 녹아든 편지.

지금은 잉크가 반쯤 날아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는 편지.

지금 까지 흘러온 시간이 한 번 더 흐르면, 아빠의 편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때쯤에는 아빠도 내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몹시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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