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3 따뜻함

2026. 1. 11.

by 미스 프레드릭

건강문제 때문에 짝꿍이 모처럼 길게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하나 그리고 둘'을 아주 오랜만에 라이카 시네마에 가서 봤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는데 이야기를 정말 잘 엮는 사람인 것 같다.

한 가족의 구성원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의 조각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내 인생의 일부는 양양의 삶과 닮이 있다. 또 일부는 팅팅, 앞으로의 일부는 NJ와 민민의 삶과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게 영화를 보고 예전부터 봐 놓은 해산물 식당에 갔다.

근데 웬걸... 만석이다.

요즘 웬만한 식당들은 예약이 필수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가 번화가에 나가서 식사를 한 것도 오랜만이니)

식사를 이제 막 시작한 테이블이 많아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우리가 망설이고 있으니 직원분이 테라스 자리에 히터를 틀어줄 테니 괜찮은지 물어봤다.

오브 콜스!! 오히려 좋은 제안이었다.


테라스 좌석에는 우리 둘만 있을 수 있고, 비닐 천막으로 잘 감싸져 있어서 히터를 틀어놓으니 오히려 아늑하고 좋았다.

약 10분 후 우리는 우리만의 이글루 같은 곳에서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굴요리를 시켜서 낮이었지만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했더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훈제 굴, 꿀대구, 피시 앤 칩스까지 남김없이 싹 먹었다.

직원의 뜻밖의 제안이 정말 감사했다.

식당에서 괜히 직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곳의 적절한 친절과 배려는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 근처에 있는 에스프레소 바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했다.

역시 만석이어서 조금 기다렸더니 금방 자리가 났다.

에스프레소 전문점이어서 맛은 따질 것도 없었다.

에스프레소 마시는 법을 빽빽이 프린트해서 준 종이를 보니, 이 분들 여기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을 쏟는다는 건 이런 작은 것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직원들의 분주하지만 숙련된 움직임을 살포시 넘겨다 보면서 우리는 마냥 행복해졌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골목골목마다 다양한 음식점, 술집, 카페들이 박혀있었다.

연희동이 핫한 건 옛날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재밌는 가게 많았나?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왔구나 싶었다.

남편이 야간근무를 시작한 게 작년 가을부터였으니 근처로 이사를 왔지만 '핫하고 힙한' 장소에 대낮에 올 기회는 별로 없었다.


우리 앞으로 자주 나오자.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데가 있네.


모처럼 만에 재밌는 영화와 맛있는 식사와 커피까지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하루였다.

날씨는 너무너무 추웠지만, 잉어빵까지 하나씩 물면서 돌아온 우리의 삶에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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