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9 소비에 대하여

2026. 1. 17.

by 미스 프레드릭

나는 없이 살아도 되는 물건에는 소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 소비는 '필요'의 영역이다.


언젠가부터(돈 버는 게 힘들다고 생각한 때부터) 내가 힘들게 번 돈을 이렇게 쓰는 게 맞나? 란 생각을 자주 했다.

어차피 옷, 신발, 가방을 사도 나중 되면 질리고, 결국 다른 걸 찾게 되는 걸 여러 번 경험한 것도 크다.

예전에는 맛집 모임까지 만들어 유명한 식당에 사람들과 찾아갔지만

지금은 그것도 흥미가 많이 떨어졌다.


내 주위가 물건으로 가득 차는 게 싫다.

나의 물건들을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을 위해 나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예쁘다고 산 물건들은 결국 나중에 쓰레기가 됐다.

소유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맥락으로 나의 외면을 치장하는 것에 인색하다.

머리도 일 년에 한두 번 자를 때 빼고는 미용실에 갈 일이 없고,

옷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산다.

화장품도 하나 사서 다 쓸 때까지 쓰고(내가 지금 쓰고 있는 섀도는 벌써 몇 년이 됐는지 모르겠다.)

신발도 운동화 외에는 사본게 언젠가 싶다.

나를 만나기 전 버는 족족 신발과 옷을 사 온 짝꿍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나의 가치관에는 이게 맞는데 가끔은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다.

오늘 쇼핑몰에 가서 살까 말까 10번은 고민하다가 결국 부츠를 샀다.

편하고 멋스러운 짧은 부츠가 있으면 여기저기 잘 신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오늘 맘에 드는 부츠를 사서 샀다.

근데 '이걸 내가 정말 사도 되는 걸까?' '신발에 이 돈을 들이는 게 맞는 거야?'란 생각이 들었다.

짝꿍은 잘 어울린다고 잘 샀다고 고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소공녀'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로도 꼽는 영화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도 영화의 주인공인 '미소'로 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미소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3가지를 제외하고는 다 포기했다.

아니, 가지지 않기로 '결정'했다.


남자친구(한솔), 위스키, 담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남자친구는 외국으로 떠났지만, 미소는 끝내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자신의 머리가 회색빛이 되어도, 집이 없어도.


나 역시 나의 '한솔, 위스키, 담배'가 무엇일지 꽤 오래 생각했고, 지금도 항상 생각한다.

내 근심 걱정의 많은 부분은 '돈 버는 일'에서부터 온다.

내가 나를 지탱해 주는 최소한의 것들만 남겨도 괜찮다고 결정한다면, 나는 꽤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한솔, 위스키, 담배'는 무엇일까?

영화, 음악, 책, 커피, 차, 집...

나는 미소와는 다르게 욕심이 많아서 3가지만 꼽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옷, 신발, 가방, 차, 액세서리 들은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소비에 인색해진 것 같다.

물건을 사는 행위가 나를 천국으로 데려다주지 않을 거란 걸.

비싼 밥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됐다.


나는 여전히 갈등한다.

소비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그 반대의 마음 사이에서...

그래도 나는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 잘 안다.

더 많이 좋아하는 걸 위해 덜 좋아하는 걸 참을 수 있게 됐다.

조금은 미소에게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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