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는 믿음
아이가 운동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유전적인 운동 자질의 부재였다. 그림이든, 노래든, 달리기든 가르치지 않아도 적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아이를 볼 때마다 예체능의 가족력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그래 예술가 집안에 예술가가 나오고, 운동 집안에 선수가 나오는 것이여. 평소의 굳은 믿음은 운동 신경이 부족한 부모 사이에 태어난 우리 집 아이가 운동을 한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가 이 길에 들어선 것이 못내 찝찝했고 늘 걱정이 앞섰다.
요즘 아이는 팀 훈련 없이 개인적으로 체력을 기르며 기술 훈련을 받고 있다. 지금은 기술 훈련에 더 집중하기보다는 몸을 만드는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공부에 빚대면 기본기를 충실하게 쌓는 느낌이랄까. 야구 본연의 재미를 느끼는 시간은 아니며 꽤나 지겹고 힘들고 지칠 수 있는 시간이다. 어린 나이에 조금 가혹하다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늦게 시작했고, 체격이고 체력이고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이 시간들이 최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힘들다는 불평불만에 야구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아이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길 바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근육통에 시달려도 근육이 생기는 신호라며 고통을 즐기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배팅 실력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잘하면 당연한 것이요, 못하면 실책으로 호통받는 수비에 묘한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운동량이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먹는 양은 자연스레 늘었지만 그럼에도 먹는 것을 '고통'으로 정의하는 아이는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먹기 시작한 흑염소즙도 맛있다며 음료수처럼 먹는다. 생각보다 지금의 과정을 꽤 즐기는 여유를 보이는데, 힘든 훈련 또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열심이다.
중2인 첫째는 지난주에 기말고사가 끝났다. 기말고사의 종료와 함께 이미 마음이 겨울방학에 들어간 아이는 낮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등교를 하질 않나, 패드를 끼고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하며 남녀 주인공에 푹 빠져 있질 않나, 영혼 없이 유튜브 쇼츠를 보며 깔깔대질 않나. 그 모습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면 어지간하다 할 정도로 보기가 싫지만 나는 굳이 별말 않고 아이의 시험 후 자유시간에 대해 주관식 답안지를 내미는 편이다. 이유는 매 시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렇다고 매 시험 점수가 다 좋은 것도, 모든 과목 수행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OMR 카드에서 답을 밀려 쓴 적도 있고, 문제를 잘못 읽고 푼 경우, 시험지에는 맞는 답을 해놓고 선지를 잘못 선택한 경우, 맞춤법이 틀리는 경우, 정말 몰라서 틀리는 문제 등 다양하게 부족한 면을 보인다. 결과가 이러해도 과정 속에서 아이는 조금 힘든 단원은 더 해보고자 하고, 사교육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도 하고, 스스로 공부시간을 늘리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자기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때론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나는 고민해 보고 아이와 방법적인 면을 현실에 맞게 얘기를 나누며 찾아간다. 이런 모습 속에서 나는 강한 믿음이 생긴다. '그래, 너는 어디서 뭘 하든 열심히 해서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야.'
전혀 다른 진로를 갖고 있는 두 아이를 키우며 종종 운동도 공부와 똑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첫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 야구소년도 노력하는 과정에 진심을 보이면 아이를 향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공부도 타고난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가 밑바탕이 된 채 목표를 향해 긍정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게으른 천재를 이길 수 있다. 그래 야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동 천재라도 노력이 항상 보장되리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집 아이가 지금처럼 꾸준히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좋다면 꿈을 못 이룰 이유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불안감을 갖고 있기 보다는 아이의 노력하는 태도에 대해 격려와 응원을 해야겠다고, 나의 마음가짐부터 정비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아이의 노력과 부모의 믿음이 잘 자리를 잡는다면 지금은 허황된 꿈으로만 보이는 야구 선수의 꿈이 언젠가는 흐릿하게라도 그려질지도.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오늘 나는 아이에게 전한다.
"노력하자. 노력하면 없는 유전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아들아, 넌 할 수 있어. 엄마는 믿는다."
먼 훗날 언젠가, <야구 선수, 꿈이 현실이 되다>의 브런치북으로 내 글이 발행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