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면 안 된다고 배운 마음

언니가 너무 미워요

by 공재

조심스러운 그녀는 여느 날처럼 평범한 일상 이야기로 상담을 시작했다. 감정을 일일이 꺼내어 보고, 이유를 붙이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까지는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다. INFJ 유형에 흔히 보이는 특성처럼, 그 모든 과정을 혼자서, 그리고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반복했다. 누군가와 나누기보다 스스로 납득하는 쪽을 택했고, 그렇게 이어진 결론은 늘 본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 상황들을 문제인지도 모른 채 넘겨버리곤 했다. “그냥 다 그런 거 아니에요?”라는 말로 퉁치면서.


가족 이야기는 특히 그랬다. 겉만 살짝 스쳐 지나갈 뿐, 가족이라는 대상에게 가진 이미지나 에피소드, 감정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걸 억지로 붙잡지는 않았다.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 질문을 밀어 넣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상담실에서 지키고자 하는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지난 한 주간의 일상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언니 이야기가 등장했고, 가족 이야기를 흘려보내던 지난 회기들과는 달리 내가 먼저 조금은 직접적으로 물었다.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핵심에는 가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흘리거나 좋게 포장하던 때와 다르게, 한 표현에서 감정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 흐름을 놓치면 다시는 잡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언니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다고 했잖아.

그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니?”


“그 날은….”


이야기를 시작하던 그녀는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언니가 너무 미워요…”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살아간다. 그 안에서 상처를 받아도, 미워해도, 맞서고 싶어도 그 감정들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것처럼 배운다. 가족을 원망하는 마음은 철없음이 되고, 불효가 되고, 결국에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이 된다. 그래서 많은 고통은 가족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디에도 제대로 놓이지 못한 채 남는다. 떠날 수도, 맞설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감정 대신 자기 자신을 눌러 담는 법을 먼저 배운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추구하는 도덕성이 높은 그녀에게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은 품어서는 안 되는 감정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스스로를 몹쓸 사람이라 비난하며 그 감정을 부정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감정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도덕성 전체를 위협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이 감정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한 그녀의 정서적 고통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불안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수준을 넘어 공황 증상으로 이어졌고, 과각성과 환각을 경험하며 더 이상 자신의 감각과 반응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착한 사람들은 타인을 공격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스스로를 가장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그렇다고 가족이 가해자였던 것도, 사랑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서로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언니는 표현 방식이 전혀 다른, 성격이 다른 한 개인이었고 우울증을 겪고 있었기에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언니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대신 잘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스스로 떠안았고, 더 착해지고 더 참고 더 버텨야 했다. 차라리 다른 자매들처럼 머리채를 잡고 싸울 수 있는 성향이었다면 갈등은 그 자리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분노를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사람이었고, 결국 그 감정은 안쪽으로만 쌓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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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와 마주하는 시간 동안 나는 자주 울컥했다. 무슨 말을 많이 해서도, 임펙트 있는 사건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예쁘고 센스 있었고, 공부도 잘했다. 동아리 활동이나 각종 공모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누가 보아도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과는 달리 그녀는 늘 긴장된 상태였고, 과도하게 조심스러웠으며, 자주 아팠다.


나는 상담실에서 때때로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슬픔을 마주한다. 너무 깊고 절망적이어서, 대상을 만나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그 감정을 버티며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일, 그것이 내게는 늘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자기 자신을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슬픔은 왜 그런지 스스로도 모른 채 조용히 유지되고 있었고, 말이 없어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졌다.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스스로 금기시해왔던 말들을 조금씩 언어로 옮겼고, 그 감정이 충분히 들 수 있는 마음이라는 확인을 받았다. 직접 표현해 보아도 괜찮았고, 예상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그녀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관계가 무너지는 일은 반드시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 지점에서 회복의 실마리가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든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 둘 다 느낄 수 있어.
그게 가족이라고 다르진 않아.
가족이니까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오히려 더 불편하고 비현실적인 거야.”



느끼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던 감정들을 어렵게 쏟아낸 그날 이후, 그녀가 가지고 온 증상들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응원하며, 다음 회기에서 다시 만나게 될 그녀를 조심스레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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