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는 내가 좀 기대되기도 해요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는 점점 말이 많아졌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그동안 어떻게 참고 있었나 싶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감정을 머리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애쓰는 편이었지만, 정작 그렇게 해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늘 괴로워하던 그녀였기에 우리는 말로만 다루기 어려운 지점들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사실 감정을 모두 말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 그런지도 모른 채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고, 분명 느끼고는 있지만 말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녀는 그동안 설명되지 않는 마음 앞에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기 때문에 괴로웠다.
그녀는 자신을 상징하는 풍성한 나무를 그렸다. 수관이 지나치게 발달해 종이에 다 담기지 못한 가지들을 바라보며, 이 가지들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어떤 날에는 자신을 블랙홀 같은 까만 점으로 표현했다. 작지만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새까만 동그라미였다. 그 안에는 스무 살을 갓 넘은 여대생이 세상을 향해 품고 있던 호기심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꿈을 자주 꾸고, 또 잘 기억하는 편이어서 기억나는 꿈 이야기들도 이어졌다. 꿈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가족을 돌보거나 돕는 역할에 놓여 있었고,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의아한 사람답게 꿈 안에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복잡해지는 자신을 마주하곤 했다고 했다. 그렇게 꿈에 등장하는 장면과 대상들이 왜 반복해서 나타나는지, 그 상징들이 그녀의 삶과 어떻게 겹쳐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꿈속의 장면들이 현실의 그녀와 닮아 있는 지점들이 하나둘 연결되었고,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던 감정들도 조금씩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과정이 흥미롭다고 했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며 그녀는 점점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감각이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는 쪽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하나씩 늘어났고, 그 말들은 누군가가 대신 붙여 준 설명이 아니라, 스스로 체득해 가며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에 가까웠다.
그녀의 일상도 서서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이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았어요”처럼 정서를 머리로 정리한 표현이 많았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친구를 보고 내가 웃고 있더라구요”,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요”처럼 자신의 상태와 감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정서적으로 불안한 언니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미뤄 두었던 교환학생도 신청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게 되었고, 함께 가고 싶어 하던 언니의 말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선을 긋기도 했다.
그 변화는 갑작스럽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으면 긴장을 했고 감각도 예민했다. 다만 그 빈도와 강도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불필요한 감각이 올라올 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금씩,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궁금해졌고, 그 궁금함을 예전처럼 덮어두지 않고 열어보고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위험한 것들은 들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상처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왔던 과거와,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던 현재를 지나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고민하는 스스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