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그래봤자 아무도 안 알아줘.”
상담 준비를 좀 과하게 한다 싶을 때, 사람들까지 챙긴다 싶을 때 꼭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내가 알잖아요.”
이 말은 내 일상의 모토이다. 그리고 내담자가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상담이 잘 되었다고 느낀다. 내가 어떤 순간에 무엇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이 굶고 오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여 사비를 들여서라도 간식을 챙겨두고,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사주고, 위로나 축하가 필요한 순간이면 선물도 준비한다. 프로그램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개인 비용을 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너무 싫어서 그렇다. 그 자리에서 이미 아쉬움이 올라오면,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가 아니라 내가 아쉽지 않으려고.
항공대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나는 상담 시간을 학생들 일정에 맞췄다. 점심시간에 상담을 잡고, 수업 때문에 시간이 안 맞는다고 하면 퇴근 이후인 7시, 8시까지 시간을 조정하며 개인이든 집단이든 진행했다. 상담실로 오기 어려운 상황이면 짐을 싸들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도 했다. 구조화는 부족할지 몰라도, 그 시간이 더 편안하고 실제로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래봤자 아무도 안 알아준다고.
상관없다. 그냥 내가 아는 거니까.
재료와 분위기 세팅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프로그램이 한결 부드럽게 흘러간다. 나만 아는 디테일을 보고 혼자 기뻐하는 순간이 있고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다. 가끔 대상자들이 숨은 의도를 알아보고 “대접받는 느낌이 난다”고 말해줄 때면, 그 한마디로도 힘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거나 일상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빈둥거릴 때도 많고, 대부분 계획이 없거나 있더라도 바꾸는 것도 불편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어서 챙기는게 아니라 그 순간 느껴지는 아쉬움을 그냥 두기 싫어서 손을 댄다. 그때그때 충실하려고 할 뿐이다.
사실 상담사로 풀타임 근무하는 일은 생각보다 열악하다. 석사 이상의 학력은 기본이고, 수련 과정을 거치고 수퍼비전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 풀타임 근무 상담사의 연봉은 대체로 3천 초반 수준인데,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들여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늘 돈은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을 스스로 막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나중을 위해 참아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본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먼저 알아차리고, 그에 맞게 조치를 취하는 편이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아쉽다는 느낌을 느끼지 않으려고 대비를 해두면 큰 문제는 덜 일어나기도 하고... 상담 장면에서도 해결은 미래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내담자 스스로 지금 이 순간을 알아리는 데서 시작되는 걸 자주 경험한다.
물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하는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유난처럼 보이거나, 괜히 비교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시선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각자 선택하는 기준과 만족의 지점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시작한 작은 시도들이 관계자들의 협조로 이어지고, 그 덕분에 상담이나 프로그램의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지는 순간들을 여러 번 보아왔다. 그 경험이 나를 이 방식에서 쉽게 물러서지 못하게 한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방식으로. 다만 내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이다.
그냥 내가 아는 것.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선택에 내가 만족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