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도 욕먹는 이유

호의가 침범이 되는 순간

by 공재

“이런 건 누가 자꾸 주는 거야?”

얼마 전 딸이 받아온 흉물스러운 인형을 보고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인형을 받은 적이 있다. 실사에 가까운 얼굴에 과장된 눈, 지나치게 생생한 털 결. 보기만 해도 징그러웠다. 집에 두면 다들 슬쩍 피했고, 만지기도 꺼려 서로 치우라고 미뤘다. 그렇게 한동안 굴러다니다가 결국 사라졌다.


누군가는 재미있자고, 좋은 마음으로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벌레 장난감이나 실사에 가까운 인형을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선물을 받자마자 싫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선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선택권은 애매해진다. 딸도 나도 버리지 못한 채 한동안 불편해하다가, 결국 누가 버렸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꺼내지 말라고 했다. 딸은 “그래도 받은 건데…” 하며 또 꺼냈다. 너무 못생겼고, 솔직히 말하면 싫었다.


왜 그런 선물을 하는 걸까.
상대의 취향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걸까.




새삼 주는 것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준다고 해서 다 베푸는 것은 아니고, 받는다고 해서 다 고마운 것도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주는지, 무엇을 주는지, 그리고 상대가 지금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까지 살피는 일. 이 선들이 흐려지면 호의는 부담이 되고, 배려는 침범이 된다.


식단중이라는데 먹으라고 음식을 올려두는 일,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굳이 두고 가는 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처치곤란한 물건을 넘기는 일. 등등 받는 사람의 취향과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남겨진 것들은 결국 공간과 마음을 떠돌다 사라진다. 설사 유용한 물건이라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건네느냐에 따라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 순간 누군가는 선택권 없이 떠안게 된다.


화면 캡처 2026-02-13 192717.jpg


물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도 그렇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주는 순간에는 사랑이었을지 몰라도, 보답을 전제로 꺼내는 순간 그것은 요구가 된다. 보답을 받지 못해 억울하다면, 그건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을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고스란히 상대의 몫이 된다. 갚아야 하는 사랑, 증명해야 하는 고마움은 또 다른 부담이 된다.


공감은 대신 느끼는 능력이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받을 수 있는지까지 살피는 감각이다. 원하지 않는 것을 주지 않는 것,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미리 밀어 넣지 않는 것. 그것은 배려 이전에 존중의 문제다.




결국 ‘주는 일’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좋은 마음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경계를 넘지 않으려는 태도. 아깝거나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조절하는 태도. 내가 주고 싶어서 준 것이니, 돌아오는 반응이 크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면서 스스로를 무리하게 만드는 일을 경계하는 태도. 그것이 나와 상대를 함께 존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보고 줄 수 있는 만큼만 주라고.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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