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난히 엄마한테 못되게 말할까?

집이라는 공간이 허락하는 말들

by 공재


“너 나한테 왜 자꾸 그렇게 말해?
나한테 이렇게 막 말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며칠 전, 고등학교 2학년 딸에게 그렇게 말했다. 대체로는 친한 편이지만, 가끔 자기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툭툭, 못되게 말을 던지는 아이에게였다. 생각해보면, 사회에서든 다른 관계에서든 나를 이렇게 대하며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딸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나도 그래. 세상에서 엄마한테만 이렇게 말해.
설마 내가 밖에서도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하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아주 다정한 엄마도, 늘 위로를 건네는 엄마도 아니다. 안 그러려고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화도 내고, 가끔은 아이가 얄미워 보일 때도 있다. 물론 아이도 자신의 모든 감정을 엄마에게 꺼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딸은 자기 기분이 엉망일 때, 그 상태 그대로 가져와도 괜찮은 사람으로 나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도 늘 받아주지는 않는다. 엄마도 사람이어서 그날의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있다. 귀엽게 넘길 수 있는 선에서는 넘기지만, 선을 넘으면 정색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 과정이 딸에게는 관계를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때와 장소, 상대의 표정과 분위기, 이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말이 적당한지.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할 선은 어디쯤인지.




가끔 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우리 아이는 저한테만 그러는 걸까요? 밖에서는 인사도 잘하고 멀쩡한데요.”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가 밖에서도 집에서 하듯 행동하면, 사회생활이 가능하겠어요?? 잘 생각해보면 집에서와는 다르게, 바깥에서는 멀쩡하게 자기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꽤 기특한 일이에요"


아이를 생각하면 얄밉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집에서는 감정을 다 쏟아내면서, 밖에서는 멀쩡한 척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다르게 행동하며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다는 건, 그 아이가 이미 많은 걸 감당하고 조절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고, 어떤 아이에게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루 종일 나름의 가면을 쓰고 지내 것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지 않을까...


아이가 집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밖에서도 살아가길 바라지도 않고, 또 밖에서 하루 종일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에게, 집에서도 그 긴장을 놓지 말라고 요구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감정이 조금은 풀려도 되고, 편안하게 머무는 공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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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화나는 감정을 모두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관계에는 숨을 고를 틈이 필요하다. 아이는 마음이 느슨해지는 사람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해진다. 그러다 보니 말이 거칠어지거나, 아프게 튀는 표현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 말은 상처를 주려고 던진 말이라기보다는, 편안해서 먼저 튀어나왔다가 곧바로 후회하게 되는 말인 경우가 많다. 나는 그 순간에, 우리 관계가 아직 잘 유지되고 있구나 하고 오히려 안도한다.


다행인 건, 딸은 아직까지는 엄마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점이다. 아픈 것, 슬픈 것, 속상한 것, 짜증 나는 것들을 함께 나눈다. 물론 좋은 걸 보았을 때도, 그 순간 가장 먼저 엄마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가끔 행운의 매듭을 만들어 주거나, 별을 접어 건네거나, 어렵게 찾은 네잎클로버를 내미는 걸 보면 그렇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상이, 그리고 그런 관계가 문득문득 고맙다.


나는 딸이 어떤 말을 해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선을 아주 세게 넘는 말을 들어보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엄마라서라기보다 엄마에게만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아이가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머물러도 되는 사람이 내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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