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곧 지나가겠지요

by 아이만 셋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 하면 저는 '콜로라도'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덴버에서 학회가 있어 가족 동반 여행을 가게 되었지요. 미국은 그런 면에서 참 좋아요. 학회가 있으면 가족 동반을 당연시하니까요. 덴버라는 도시도 물론 볼거리가 많아 좋았지만, 너무 좋아서 예정보다 3일을 더 머물렀던 Estes Park 근처의 캐빈은 정말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밤이면 깊은 산속의 적막과 칠흑 같은 하늘에 콕콕 보석처럼 박혀 빛나던 수많은 별, 아침에 새소리로 잠에서 깨어 창을 열면 훅하고 들어오는 숲 향기, 아이들이랑 하던 트래킹, 어스름 저녁에는 노을을 등지고 하던 낚시.... '평화롭다'라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그런 곳, 제대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무덤덤하던 내가 유일하게 '좋다'라고 표현했고, 2박 3일이 그래서 5박 6일로 변경되었던 곳입니다. 콜로라도의 그 깊은 가을이 너무 그립습니다.

한국에도 찾아보면 그런 곳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곳에 간들 평화롭다, 몸과 마음이 힐링된다 그런 기분이 들까요? 아마도 외롭다, 쓸쓸하다, 내가 정말 혼자구나 이런 느낌이 더 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핀셋으로 '그 생각'을 딱 집어 들어냅니다. 우울하기 싫으니까요.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잠자리에 들면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슬픔을 허락하시는 시간이구나.' '5분만 슬퍼할게요. 더 이상은 안 돼요.' 그렇게 저는 슬픔을 이겨냅니다.


여름은 진작에 물러간 것 같은, 가을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어정쩡한 날에 글작가 동아리에서 소풍을 갔습니다. 여덟 시쯤 아가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아버님 성모병원 진료 예약이 되어있는데 나보고 '모시고 가라'라고 합니다. '알았어요.'라는 대답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꾹 눌러 삼킵니다. 어디 가냐고 물어볼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했지만, 다행히 그 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편에 죄송함을 묻어둔 채 소풍을 갔습니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출발해서 산책도 하고, 점심도 먹고, 카페도 가고 아주 즐겁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카페에서 깜박 잠든 J를 보며 삶의 고단함이 전해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녀에게서 저의 모습을 보았겠지요.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 주고, 그 사진 찍는 모습을 뒤에서 또 찍고 참 훈훈한 풍경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나와 휴대폰을 다시 보니 아가씨한테서 12시 반쯤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올라갈 수 있는지?' 젖은 머리 휘날리며 바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죄송함을 들어내고 정말 홀가분하게 가을 소풍을 오롯이 즐겼습니다.


당신이 가고 없는 가을을 저는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잘 보내고 있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고, 섭섭해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당신도 거기서 곧 지나가 버릴 가을을, 내가 함께하지 못하는 가을을, 그토록 좋아하는 가을을 당신의 방법으로 즐기시길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