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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Jun 23. 2021

“좋은”에 얽매였던 삶

“좋은”이라는 프레임 이제 그만!


“좋은"만 붙으면 정말 좋은 것 일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좋은"이라는 단어에 갇히게 된다.
좋은 아이, 좋은 언니, 좋은오빠, 좋은 누나, 모든 책임과 역할에 "좋은"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쓰는 순간 단어에 갇히고 만다.
"좋다"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
좋은 아이가 된다는 것? 착한 아이? 잘 울지 않는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어떤 것이 좋다는 것에 부합되는 거지?
들을 때만 좋은 "좋다"에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판단이 들어가 있다.
말하는 이의 바람과 기준, 사고방식에 따라 "좋다"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화자가 조용히 책 읽는 아이를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행동과 역할을 해내는 아이가
좋은 아이가 될 것이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면? 아마도 그 아이는 좋은 아이라는 호칭을 듣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여기저기 "좋은"을 가져다 붙였다.
나의 역할에도 좋은 언니,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직원, 좋은 선생님 등등... 수없이 많은 역할에 "좋은"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좋은 딸,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학창 시절을 순종적인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고,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일하며 살림하며 아이를 키우는 삶을 선택했다. 무엇이든 잘하는 슈퍼우먼...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만삭에도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려냈고, 좋은 직원이 되기 위해 조기진통이 왔을 때에도 병원에 입원해서 업무를 처리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좋은"이라는 단어를 엄마 앞에 붙이게 된다.
좋은 엄마라는 호칭을 듣기 위해 나는 육아 담당자, 놀이 담당자, 학습 담당자, 건강 책임자, 영양 사이 자조 리사 여러 역할을 완벽히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좋은 엄마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많은 일들이 생겨났고 아이들의 일이, 아이들의 성과가 나의 성적표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아닌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을 나의 틀 안에 가두려 할수록, 아이의 눈빛은 날카로워져만 갔다.
큰아이 초등 2학년 말 아이의 눈빛이 전과 다름이 느껴졌다.
순간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의 사춘기에 대한 두려움.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것이다. 타인보다는 나의 아이에게 좋은 엄마.
아이들은 그저 엄마를 좋아한다.
엄마가 이래서 저래서가 아니라, 내 엄마니까..
"좋은"이라는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면 행동이 훨씬 자유로워진다.
타인의 기준에 좋은 것보다는 나의 기준과 목적에 알맞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좋은"이 정말 "좋은"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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