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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름모 Sep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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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의 나

 빨리도 어른이 되고 싶던 어린 시절과 달리 스무 살의 나는 어린날의 내가 궁금했다. 잘도 감상에 젖어들어 하늘 높이 있던 기분도 금세 비라도 쏟을 듯이 추락해버렸기에 10대의 나를 정리하고자 나의 과거를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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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태어난 병원에서부터 노란 옷을 입고 콧물 훌쩍이던 유년시절의 집과 처음 학교를 입학한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오래 살아 정들었던 집. 그리고 그 당시 내가 몸 뉘었던 집까지. 늘 시원했고 늘 따듯했던 집들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시간 속의 나를 염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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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티 바람으로 세발자전거를 타던 집 앞 골목이라 던 지. 연락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들던 놀이터. 매주 토요일이면 친구들과 뛰어갔던 목욕탕과 처음 술을 마셨던 집 앞 공원. 다음 주말에 보자며 다 같이 담배 한 대 물고 인사하던 어둑한 막다른 골목. 그리고 수백 번도 더 걸었을 나의 산책로까지. 추억이 짖게 묻은 장소에선 쉽게도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의 추억을 몇 장의 사진에 담아 보니 '아직 참 어리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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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살, 한 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인식하는 범위는 커져간다.
한 장소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동으로. 동에서 도시로 말이다. 하지만 추억은 나의 인식 범위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스물일곱 현재의 나는 대구와 태백이라는 도시를 인식하지만 빈 공간이 많다고 느껴진다.
 작은 거리가 전부였던 때는 그 거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추억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이유만 봐도 어른이 된다는 건 참 불합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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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과거를 기록한 사진을 나는 모두 지워버렸다. 다시 10년이 지나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때 다시 30년의 나를 여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른까지 앞으로 3년. 3년 후는 지금 보다 더 지루한 어른이 되어 있겠지만 서른의 나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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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그랬다. 세상이 변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두 가지 말이 있다고. 그 첫째는 "나 때는 말이야"고 둘째는 "그때 좋았지"라고 말이다.
 그 시절 죽도록 어른이 되고 싶던 나는 추억을 담으며 연거푸 "그때 참 좋았는데"를 남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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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뒤의 나도 오늘의 나를 추억하며 '그때 참 좋았지' 어린아이 보듯 간지러운 미소를 띄워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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