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난 8남매의 막내딸이다. 엄마가 일본강점기 때 낳은 큰오빠와 언니 둘.. 아버지와 재혼해서 낳은 작은오빠와 언니 3명, 그렇게 7남매였다. 엄마에게 결혼 전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살기도 힘든데 자식을 왜 이리 많이 낳았어?”
“어쩌다 보니 생겼어”
조금은 쑥스러워 하면서 그냥 어쩌다 보니 생겼다고 얼버무리셨다. 엄마는 많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러니 온몸이 고장 안 나는 것이 더 이상한 현상이리라. 몸이 너무 좋지 않았을 때 주위에서 이럴 때는 아이 하나 낳고 몸조리 잘하면 건강해진다고 권유를 했다. 자신들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런 권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엄마의 건강회복 몸조리를 위한 미션을 가지고 유일하게 의도적 임신을 해서 낳은 막내딸이 되었다. 태어나보니 난 이미 조카보다 나이가 어린 이모란 자리에 있었다. 큰언니의 아들이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둘째 언니의 딸은 나와 동갑이었다. 큰언니의 둘째는 나보다 2살밖에 어리지 않았고 이어 줄줄이 조카들이 있었다. 함께 놀 때면 누가 봐도 어린아이들의 무리였지만 난 부인할 수 없이 조카들의 이모이며 고모였다. 어린 이모. 막내이면서도 막내일 수 없는 나의 자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누가 알까?
어릴 적 난 내 이름이 막낸 줄 알았다. 모두 날 막내라고 불렀다. 조카들도 막내이모, 막내 고모라고 불렀으니까… 몸조리용으로 그 미션 수행하듯 내가 태어나고 나서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일을 하시기 시작했고 엄마도 건강이 많이 호전되었다. 몸조리용으로 태어난 임무를 나름은 완수를 한 셈이다.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위한 존재로 나서인지 살아가면서 나보다 타인이 우선되는 삶을 살아왔다. 양보하는 것도 당연했다. 막내이지만 나보다 서열에서 낮은 조카들에게 양보해야 했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을 생각하느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꿈꾸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었다. 결혼을 결정할 때도 부모님이 걱정 안 하시는 결혼을 선택했고 결혼을 해서도 남편과 아이들이 우선되는 삶을 살았다.
요즘은 날 향해 자꾸 되뇌는 시간이 생긴다. 괜찮니? 이렇게 산 것에 대해 넌 괜찮았어? 질문하면 난 답을 못한다. 다른 곳을 쳐다볼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시간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날 돌아볼 틈이 생길 때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후회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후회 없이 사랑하고 쏟았으니까… 그럼 앞으로는? 이란 질문이 이어지면 이제는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구친다. 어떤 시간을 가지고 싶냐고 물으면 딱히 말할 답은 없다. 적어도 내일 하늘의 부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래도 밀려오는 후회로 질긴 생을 구걸하는 구차함을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몸조리용으로 태어났다. 임무완수를 했다. 지금이라도 날개를 달고 날아보고 싶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기적이고 말괄량이이며 자기표현에 거리낌 없는 막내의 당당함을 장착하고 훌훌 떠날 수 있는 명랑한 가벼움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