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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Oct 22. 2021

닮고 싶은 小菊

나와 닮은 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닮아야 하고 닮고 싶은 꽃이다. 

활짝 피었던 하얀 꽃잎이 조금씩 하늘을 보며 오므라들고 있다. 희한하다. 다른 꽃들은 시간이 지나 시들면 꽃잎이 축 처져서 바닥을 향하다가 한잎 두잎 떨어지는데 내가 좋아하는 하얀 소국은 자신의 몸을 한껏 움츠려 들면서 살아내겠다는 결의를 다지듯이 작은 꽃잎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다.

세상을 향해 큰소리도 내지 못하고 속삭이듯 말한다.

"나 아직 괜찮아요"


한 아름의 꽃 한 다발이 이렇게 짠!!


10월 9일에 분홍 장미와 분홍 카네이션, 이름도 모르는 꽃들, 그리고 하얀 소국까지 한 아름 안길 만큼의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 가지고 있던 꽃병을 다 꺼내 이리저리 나누어 꽂았다. 장미는 장미대로, 카네이션과 소국은 함께, 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공 같은 꽃은 여러 꽃과 함께 소담하게 꽃병에 꽂았다. 책방이 순식간에 웨딩홀처럼 화사하니 분홍분홍 해졌다. 책방에 오시는 분들도 함께 설레는 신부처럼 즐거워하며 행복해했다.


내가 이리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아니었다. 어차피 금방 시들어 버려야 하고, 물 갈아주는 것조차 세상 귀찮아할 만큼 바쁜 삶, 조금 시들어 보이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는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나의 태도도 맘에 들지 않았다. 꽃 사는 돈으로 아이들 먹을 것을 더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 소비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꽃을 좋아하다니. 꽃을 보고 미소를 절로 짓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기도 하다. 모든 꽃을 이제는 좋아한다. 그러나 꽃이 사치라고 여길 때도 유일하게 좋아했던 꽃, 소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 내가 소국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꽃보다 오래가는 끈기, 화려하지 않은 외모,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소국을 좋아했다. 장미나 튤립, 요즘은 라넌큘러스처럼 한송이로도 예쁜 선물이 되는 꽃이 있지만 소국은 꽃송이가 작아서 여러 개가 모여야 그래도 봐줄 만한 선물을 할 수 있다. 소국을 보면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혼자만 화려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라서 잔잔히 드러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마음에 스며든다.


여기저기에 꽂혀있었던 꽃병의 꽃이 하나씩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장미를 버렸고, 다음엔 그래도 오래간다는 카네이션도 버텨내지 못하고 꽃잎이 말라서 결국 휴지통 신세가 되었다.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을 버렸다. 그리고 남은 소국. 혼자 버티며 살아보겠노라고 애쓰고 있다.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간절함을 나타내고 있다. 소국은 다른 꽃보다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올봄에 선물 받았던 소국 한 다발이 근 한 달 넘게 그 자리를 지켰었다. 소국의 인내심을 사랑한다. 살아내려 애쓰는 모습은 기특한 마음을 넘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얀 소국의 꽃말은 성실과 진실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리고 성실함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과 나, 일과 나, 하나님과 나, 모든 부분에서 진실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실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면하면 많이 실망하게 된다. 특히 마음을 열고 신뢰하며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실망을 넘어 절망이 느껴져서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아릿한 아픔과 답답함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깊이 알게 되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겉으로 보이는 이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쓰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부정적 탐색이 발동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의 작은 그릇에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의지적으로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말이다. 좋은 사람이라 믿고, 서로를 더 알게 되면서는 그 사람을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기고 싶어, 무엇이든 수용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운다. 그 의지는 번번이 배반의 장미처럼 반전에 반전을 보이며 결국 꺾이는 경험을 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라는 실낱같은 바람을 놓치지 못하고 세상 지질한 미련을 계속 가지게 된다. 어쩌면 포기하지 못하고, 지질해 보이고, 미련스러워 보여도 나의 진실이 변하지 않는 것임을 보여주며 기다리는 것, 그 성실함을 작은 꽃이 가르쳐 주려는 것이 아닐까?


화려하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작은 꽃의 진실과 성실함을 보면서 내가 소국과 같다고 생각한 것은 지나친 착각이었다. 난 소국의 숭고한 인내도, 애씀의 열정도 절대 따라갈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 모두 시들어 버려진 가운데 오롯이 남아 서로 안간힘을 쓰며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모습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작은 꽃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직 괜찮다고, 견딜만하다고.

그러니 진실한 사랑으로 성실하게 사랑하라고..



고맙다. 나의 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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