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하늘의 음성과 창업을 한 지혁
저녁 5시. 유난히 일이 많았던 하루였다. 다음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지혁은 도서관에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렇게 내리던 장마비는 그쳐 있었다. 여름 특유의 풀내음이 났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지혁의 마음에 방금전 거지 아저씨가 한 말이 남아있었다.
“오~ 그래. 장사는 이렇게 해야지! 기본이 되었어! 기본이. 그래~ 앞으로 계속 장사 해”
사실 많은 고객들이 지혁을 보면서 장사를 해도 될꺼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혁의 마음에는 ‘장사’라는 단어가 없었다. 카페든 바리스타든 그냥 우연히 만나서 살며시 지나가는 일이거니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일은 유난히 가슴에 남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거지 아저씨가 장사를 하라고 할 정도면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하늘의 음성처럼 들렸다.
직업은 직과 업의 합성어라고 한다. 직이 옷이라면 업은 몸과 같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은 있지만 ‘업’을 못 찾는 경우가 있다. 지혁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지혁은 자신의 ‘업’에 가까운 일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일을 만난 것이었다. 물론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해 자세는 모두가 달랐다. 지혁도 ‘일은 그냥 일’일뿐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다. 꿈을 찾고, 무엇인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일을 일이 아닌 삶으로 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이 ‘직’이 될 것인지, ‘업’이 될 것인지는 일의 종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지혁은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업’이라고 느낀다고 직장 내에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지혁이 매니져가 되고 나서 처음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청하기 전까지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걸 몰랐던 지혁은 처음 들어 온 바리스타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한시도 쉬지 않고 알려주고 또 알려준 것이다. 지식은 곧 힘이고 돈이며,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를 만나지 못한 열심은 많은 이들을 다치고 지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3일이 안 되어서 그만두는 바리스타들을 보면서 지혁의 고민은 커졌다. 어떻게 해야 되는거지? 그때 지혁은 아버지에게 검도장에서 있었던 일을 듣게 된다. 지혁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부터 검도를 하셨다. 지혁의 아버지가 다니는 도장은 대전 지역 관장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검도장이었다. 모두가 관장이고 사범이다보니 그 검도장에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고 한다. 그 룰은 바로 요청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든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하면 그때 알려준다고 한다. 준비가 되야 스승이 나타나는 법이다. 그렇다고 스승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스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만 내가 준비가 안되었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혁은 자신도 그렇게 후임 바리스타들을 대하기로 했다.
처음 출근한 바리스타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냥 보라고 했다. 한 3일은 그냥 두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일을 가르쳐주기 전에 우선 친해지는 쪽을 택했다. 친해져야 일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4일째가 되면 살살 일이 눈에 들어올 시간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지혁은 조금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3일을 기다리면 3개월을 버는 것이었다.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자 오히려 일이 잘되기 시작했다.
커피 학원에서 바리스타 모든 과정을 지혁은 수료를 했다. 학원에서는 가끔 지혁이 시간이 될 때 보조 강사로 와서 일하라는 제안을 했다. 지혁은 쉬는 날 틈틈이 가서 라떼아트 강의 때 보조 강사로 활동을 했다. 라떼아트는 에스프레소 위에 스팀 우유를 부으면서 만든 그림을 말한다. 에스프레소 위에 있는 갈색 기름을 크레마라고 하는데, 이 기름과 스팀 우유의 밀도가 같아서 그림이 그려진다. 라떼아트를 할 때는 우유가 자연스럽게 밀리게 해야지 억지로 그려선 절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초보자들은 우유를 억지로 붓는다. 어깨에는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다. 계속 실패에 실패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빠진다. 될때로 되라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우유를 부으면 그제서야 그림이 나오는 것이었다. 지혁은 많은 일들이 라떼 아트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혁에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고, 일도 익숙해진 지혁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되니 카페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보였다. 2년이 지나고 지혁은 이제 자신의 카페가 하고 싶었다. 지혁은 카페의 대부분의 일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창업을 하고 나니 지혁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매니져나 점장으로 했던 일과 사장으로 해야 되는 일은 ‘결’이 달랐다. 커피를 만드는 일은 모든 일 중 극히 작은 부분이었다.
창업을 하고 나서 3개월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돈이 나갈 곳은 왜 이리 많은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꿈꾸던 자신만의 카페였는데 막상 차리고 나니 현실 그 자체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바리스타와 현실에서 경험하는 바리스타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바라보던 사장님과 자신이 직접 겪은 사장의 삶은 드라마와 현실의 간극보다 더 큰 간극으로 느껴지는 지혁이었다.
첫 오픈 날. 집에 돌아온 지혁은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장사가 원래 이렇게 외로운 것인가? 동료들과 일했던 카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처음 사장이 된 지혁은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다. 혼자 문 열고, 혼자 재료 준비하고, 혼자 월세를 내야 했다.
3개월이 지나자 지혁은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방법을 찾았지만 방법을 알 길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날이 추워졌고 매출은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강쌤을 만나게 된 지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