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역카페와 거지 똥
새벽 5시. 휴대폰의 알람이 울렸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난 지혁이었다. 9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오픈이 6시인걸 아는 이상 6시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혁이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달려갔다. 3월의 마지막 주라고 해도 아직은 쌀쌀한 감이 있었다.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나왔고 거리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지혁은 갑자기 행복함을 느꼈다. 음악이 좋아서일까? 아니다. 이 행복감의 정체는 아마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는 그런 행복감일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퇴사 이후로 모두 지혁의 선택이었다. 도서관에 간 것도.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것도 말이다. 이제 누구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그리 근사한 직장이나 차는 없지만 말이다. 월요일을 싫어하면 직장에 출근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가벼움이었다.
20분 정도 달리니 역에 보였다. 지혁이 지원한 카페는 역사 2층에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 45분. 너무 일찍 도착한걸까? 아직 카페의 셔터문 닫혀있었다. 5시 55분이 되니 지혁보다는 조금은 어릴 것 같은 또래의 여자가 카페 셔터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혁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서지혁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어?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9시까지 출근 아니셨어요?”
“맞아요. 그런데 첫날이라서 조금 일찍 왔어요.”
그렇게 지혁의 카페 아르바이트는 시작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근무하는 바리스타들과 모두 친해졌다. 지혁이 일했던 카페는 대구에 본사가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였다. 주로 역이나 공항에 입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팀장들은 모두 대구 사람들이었다. 새벽 6시에 열어서 밤 11시까지 영업을 하는 카페다 보니 바리스타들이 금방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뽑히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무엇보다 역에는 근무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우선 본사에서, 그리고 역에서, 비밀 요원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서비스 체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혁은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느꼈다. 지혁은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중에 카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대구에 있는 팀장들은 모두 지혁 나이의 또래들이었다. 주로 갑자기 근무가 펑크 나면 대구에서 대전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와서 근무를 하곤 했다. 카페가 대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팀장들은 늘 다른 도시로 가서 대체 근무를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지혁이 보는 팀장들은 약간씩 화가 나 있거나 지쳐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꼭 월급날이 지난 다음 날에는 1명씩 무단으로 일을 그만두고 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많았지만 특히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많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중에는 매니져들끼리 내기를 하기도 했다. ‘이번에 들어온 저 친구는 분명 월급 받고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거야. 아니야. 할아버지가 아니라 집안 사정이 생겼다고 할꺼 같어.’ 10이면 10. 예상은 적중했다.
지혁이 카페에서 일을 한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팀장이 내려왔다. 팀장과 같이 일하면 서로 불편했다. 그래서 지혁은 팀장에게 제안을 했다.
“팀장님. 그냥 여기에 있는 모든 일을 저한테 다 알려주세요. 사람이 펑크 나면 다른 곳은 몰라도 대전쪽은 제가 메울께요. 그럼 팀장님도 좋고 저도 좋지 않겠어요?”
“에이~ 지혁씨. 지혁씨한테 내가 일을 다 알려주면 지혁씨 도망갈걸~”
“아니에요. 도망 안 갈께요. 제가 제 근무 시간인 점심 12시 넘고 나서는 퇴근했다 치고 영업 끝나는 시간까지 배울께요. 그냥 다 알려주세요.”
지혁이 군대에서 배운 한 가지는 아는 것이 정말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많이 알고 있는 고참은 늘 대우를 받았다. 그건 비단 군대 뿐만은 아닐 것이다. 딱 3일만 고생하고 다 배워두자. 그리고 팀장들이 대전에 못 오게 하자. 그렇게 매일 17시간 동안 1층과 2층에 있는 2개 매장 일을 다 배우는데는 꽉 찬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혁은 잊어버리지 않게 꼼꼼이 메모를 해가면 배웠다.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일 때는 어떻게 대체 해야 되는지. 식자재는 어디서 구입하고, 어디에 오더를 내려야 하는지. 어디에 무엇이 있고. 그것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다 배웠다. 4일째에는 지혁이 팀장이 보는 앞에서 그 일들을 했다. 팀장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지혁 위에 있는 직원들이 모두 제 갈길을 찾아 나갔다. 점장으로 있던 분은 창업을 해서 나갔고, 어떤 친구는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그만 두었다. 또 다른 친구는 시급이 조금 더 높은 다른 카페로 이직을 했다.
지혁 위로 있던 직원들이 다 나가자 지혁은 그 카페의 매니져이자 점장이 되었다. 6시간만 카페에서 일하던 지혁은 어느덧 11시간이 넘게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말 희한했던 것은 마치 이 길이 지혁의 길인것처럼 아무 저항 없이 모든 상황들이 하나씩 하나씩 열리고 있었다. 지혁도 그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운 지혁이었다. 커피를 배우는 것도 즐겁고, 고객을 대하는 것도 즐거웠다.
7월 초. 장마가 시작되었다. 역에서는 장마 시즌이 되면 노숙하는 분들이 역안으로 들어온다. 가끔씩 옷을 훌렁 벗고 역안을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있는데 곧 역무원에게 잡혀가곤 했다.
장마가 시작되면 역에서는 각 매장의 매니져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가지러 간다. 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정해진 음식물 쓰레기 통에 담아서 지정된 장소에 가져다 놓는다. 그 장소를 발전소라고 불렀는데 정확히 그 장소가 어떤 발전소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음식물 쓰레기 통을 퇴근하는 직원이 놓고 가면 밤 사이에 음식물 쓰레기차가 와서 수거해가는 것이다. 퇴근할 때는 뚜껑을 닫아서 내놓으면 음식물 쓰레기차는 음식물을 비우고 뚜껑을 열어 둔 채로 간다. 문제는 장마가 되면 역 안에 있던 노숙자 분들이 그 음식물 통에 똥을 싸둔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화장실 가기 귀찮아서? 그냥 습관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가? 확실한 것은 30개가 넘게 입점해있는 매장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 중 하나에는 반드시 똥이 들어있다는 사실이었다. 30분의 1의 확률이다. 출근할 때마다 정말 스릴이 안 넘칠래야 안 넘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가 억수로 오는 그 날. 지혁은 30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당첨되었다.
“아아아악~~~!! x발!!”
똥을 보는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났다. 30분의 1의 확률을 뚫고 걸린 것도 웃겼고, 그 똥을 치우는 자신도 웃겼으며, 이런 상황 자체가 코미디 같았다. 엄청 웃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면 로또에 당첨된 줄 알겠지? 사실은 똥인데 말야! 아까 뱉은 욕과는 다르게 지혁의 기분은 그냥 좋았다. 웃어서 기분이 좋은건지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혁은 계속 웃음이 나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은 행복한 웃음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