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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Mar 30. 2022

다시 시작

끝났으니 이제 시작

 30일 놓아주기 도전이 오늘 드디어 끝났다. 사실 어제 30개의 물건을 놓아주며 끝낼 생각이었는데, 14일째에 14개를 놓아주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오늘 14개를 추가로 놓아주었다.


 총 465개(1+2+3....+30)의 물건을 놓아주고 나면 더 이상 놓아줄 것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놓아주면 놓아줄수록 놓아줄 것들이 생각나거나 발견되었다. 도전 도중에 목표가 지나치다고 생각해 포기할 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고비를 넘기니 잊힌 물건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욕심과 헛된 기대, 그리고 미련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사용할 줄도, 베풀 줄도, 포기할 줄도 모르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쓰지도 않을 거면서 공유하지도 않는 이상한 소유욕 때문에 빛나던 물건들의 쓸모는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빛을 잃은 물건들은 다른 물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쓰지 않는 물건들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도전을 하면서 얻은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광고에서 새 제품을 봐도 구매욕이 생기지 않았다. '사봤자 몇 번 쓰이고 잊히겠지', '저거 나중에 제대로 버리려면 골치 아프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소유하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0일 도전을 하면서 깨달은 보관 비용, 관리 비용, 폐기 비용의 크기는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도전 시작 전에는 에어프라이어를 정말 사고 싶었다. 여러 전자제품을 버린 지금, 에어 프라이기 전용 식품은 프라이팬에 전 부칠만큼의 기름을 부어 데워도 충분히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수록 좋다고 하는 에어프라이어에게 돈, 공간, 그리고 각종 주의사항을 위한 에너지를 투자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래서인지 물건보다 경험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간, 새로운 경험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영감은 물건이 주는 편리함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나의 가설을 시험해보고 싶어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공연 준비와 독서는 같은 기간에 구매한 물건이나 음식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내 가설이 유효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집의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자주 열지 않는 서랍이나 찬장에는 어떤 놀라움(?)이 숨겨져 있을지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혹시 모른다. 먼지 구덩이 속에 나에게 맞는 열쇠가 있을지.


 그나저나 내가 놓아준 465개의 물건은 각각의 쓸모를 잘 찾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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