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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Mar 31. 2022

요즘 뭐하고 살아?

난 이런 사람이야

 학부 수업을 들으며 친하게 지냈던 형에게서 메시지가 온 적이 있었다.


"나 000이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인사에는 반갑게 맞장구쳤는데 돌아오는 질문에는 멈칫했다.

"요즘 뭐하고 지내?"


 멈칫한 나에게 나도 놀랐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브런치 작가 소개처럼 담백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는데 무엇이 나를 멈칫하게 했을까. 설마 나는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던 건가. 너무 당황했다. 나 자신과는 깊이 있는 대화를 여러 번 해왔지만 다른 사람과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 가족과 친구들과도. 이 때는 명함을 만들기 전이었으므로,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 앞에서 나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리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놀고먹고 있다고 가볍게 웃고 넘기며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근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형은 최근에 입사를 해서 회사에 적응 중이라고 했다. 형의 일상과 성취를 들어보니 충분히 취업할만했다. 형처럼 성실하게 준비해 온 사람이 취업하지 못하면 도대체 누가 취업하나 싶었다. 갑자기 말주변이 없어진 나는 요새 힘들어서 푹 쉬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냥 힘들어서 쉬고 있다기엔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고 있지만 어떻게 설명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일기도 쓰고, 소설도 계획하고 있고, 공연 준비도 이것저것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아보니 재밌게 살고 싶다고 얘기하려던 것을 요리조리 돌려 말한 것 같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우리 이야기,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형이 말했다.

"그때 네가 시험공부 꽤 도와줬는데"

생각해 보니 대학 4년 동안 나는 참 열심히 공부하긴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나 재수생 때 이렇게 공부할 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은 공부한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교수님 말 잘 듣고 학점 좋은 것을 보니 너는 딱 공기업, 공무원, 교사 재질이라고 장난쳤던 동기들이 생각났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 때 해당 직업군을 막연하게 꿈꾸기도 했었다.


 험난한 취업 시장과 경험, 스펙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나 최근까지 어떻게든 빨리 그럴듯한 곳에 취업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나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 중이야."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을 뱉어버린 뒤론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한 뒤에는 머리가 띵해지며 생각이 없어진다는데 혹시 그 기분이 이 기분인가 싶었다. 그동안 일기에서는 나를 당당히 표현해왔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직 연습이 많이 필요했다. 이제 명함도 만들었으니 명함을 건네는 연습을 자주 해야겠다. 난 지금 이런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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