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유목민 Mar 29. 2022

그걸 왜 버려?

가장 놓아주기 어려운 물건은 내 물건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충분한 시간 없이 갑자기 요구하는 순간 거부당한다는 것을.


 오늘은 30일 놓아주기 도전 완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tv 밑 서랍장은 30개의 물건을 놓아줘야 하는 나에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내 기준으로는 버려야 하는 것들이 확실한 잡동사니들이 모여있어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데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버린 전자제품의 설명서, 포장, 규격이 너무 오래된 케이블, 액이 흘러나오는 건전지, 철 지난 달력 등 tv 밑 서랍은 사실상 쓰레기통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요즘 설명서를 pdf 파일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사용하고 있는 전자제품의 설명서도 큰 고민 없이 놓아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는 설명서는 스캔 어플을 이용해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 해당 전자제품에 매뉴얼과 고객센터 홈페이지의 QR 코드 스티커를 붙이면 공간을 줄이면서 더 쉽게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다 보니 살짝 구겨진 사진 한 장과 오래된 디지털카메라 하나가 남았다. 필요 없는 것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느라 정작 추억의 사진은 화장지 휴지처럼 돌돌 말려 펴기가 어려웠다. 정말 어이없는 아이러니다. 사진 펴느라 생긴 주름은 현상소에 가서 부탁을 해야겠다.


 당연히 디지털카메라도 미련 없이 놓아줄 예정이었다. 최근 2년 동안 손 안 댄 것은 물론이고, 나는 이 물건을 오늘 처음 봤다. 내가 산 물건은 아니었으므로 누나에게 물어봤다.


"그걸 왜? 작동하는 거 아니야?"

"이 집 와서 이걸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말은 없었지만 거절의 뜻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본전을 잊는다는 것, 미련을 버리는 것은 남에게도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놓아주기를 결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듯이, 누나에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자주 썼던 본가의 피아노는 내 손으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엄마가 설득하고 대신 놓아줬다.

 올챙이 적 생각하는 개구리가 되어야겠다.


 아,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키보드를 보니 나는 개구리인 척하는 올챙이였다.

 잠시 너무 거만했다.

작가의 이전글 불합격에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