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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Apr 07. 2022

전염이 잘 되는 것

위생 관리뿐만 아니라 이것도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온 누나는 평소와는 달랐다. 좋아하는 간식이 집에 없다고 하자, 오늘은 되는 일이 없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반응했다. 오늘 가게에서 좋아하는 물건이 매진됐는데 집에서마저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으니 마음이 심란한 듯했다.


 나는 고민 끝에 식단 관리를 느슨하게 하라고 누나한테 말했다. 요새 바깥에 오래 있어 칼로리 소모가 크니 칼로리와 탄수화물 섭취를 늘리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했다. 누나는 내 발화 의도를 눈치챈 듯 대답했다.


"오늘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일 뻔했어."

"그런데 운전자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그 사람은 딴짓하느라 신호 맞춰 건너는 보행자도 못 봤으면서."

"정말 도덕관념도 없는 주제에 나한테 상처나 주고 말이야."


 다행히 누나는 원인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나에게 공유했다. 누나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누나가 공유하지 않았다면 내 스트레스도 같이 쌓였을 뻔했다.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나는 짧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정도 도덕관념 하고 안전수칙도 못 지킬 정도의 인품을 가진 사람은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 못 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을 걸?"

 단지 그 사람 때문에 누나가 하루를 망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답했다. 다행히 누나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다.


 저녁을 먹고 하얀 모니터를 쳐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보행자에 짜증을 낸 그 운전자에게도 오늘은 평소와 다른 날이 아니었을까. 직장이나 가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혼이 빠진 채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운전하고 있지 않았을까. 운전자의 부정적 감정은 누나에게 빠르게 옮았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손 소독과 손 씻기를 하듯이,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려면 클린룸에 들어가야 하듯이, 공공기물 이용 전후에 소독을 하듯이, 부정적 감정이 넘쳐흐르지 않도록 감정의 방화벽과 환풍구를 잘 구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날이었다. 오늘치 일기를 다 썼으니 이제 저녁 산책을 하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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