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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Dec 23. 2021

손님, 이제 오래된 습관은 버리시죠.

나만 불편한(?) 식당 탐방기

쉬는 날 백화점을 산책하다 배고파 지하 식당가에 들렀다.

지하 식당가에서 한참 돌아다니던 배고픈, 결정장애 하이에나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결국 근처에 있는 돈부리 집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님! 선주문입니다."

남은 힘을 겨우 모아 주문까지 마친 나는 다시 한번 자리에 주저앉은 뒤 책을 읽고 있었다.


"에비동 나왔습니다!"

'오오 푸짐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숟가락을 든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나는 비빔밥의 고장에서 자란 덕분인지 일식 덮밥을 먹을 때에 숟가락으로 한 두 번 뒤적뒤적한 뒤에 맛을 보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이 에비동, 도저히 뒤적뒤적할 수가 없다!


"어우, 이거 어떻게 먹어야 되는 거지?"

마침 옆 자리 손님이 나 대신 혼잣말을 해주었다.


음식이 깊고 폭이 좁은 그릇에 빈틈없이 꽉 채워 나왔기 때문이었다. 두루미 집에 초대되어,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바라보는 여우처럼 잠시 당황한 나는 손을 들어 폭이 넓은 그릇에 옮겨달라고 말할 참이었다. 


그때 신기하게도 학교 앞 일식집 아주머니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돈부리는 뒤적뒤적하지 말고 떠먹듯이 먹어야 맛있어요. 뒤적뒤적하면 싱겁고 맛없게 느껴져요."


그릇 바꿔달라는 손을 머쓱하게 내리고, 돈부리를 파르페처럼 깊숙이 떠먹어봤다.

부드러운 계란에 곁들여진 진한 소스가 밥과 새우튀김에 딱 알맞았고, 간이 된 층의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쯤에는 흰밥이 산뜻하게 입안을 깔끔하게 해 주었다. 


파르페. Pinguino,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이 집 사장님은 돈부리를 비벼 먹지 말라는 잔소리 대신 폭이 접은 접시로 먹는 방법을 우아하게 유도하고 있었다. 혹여나 손님이 맛없게 비벼먹을까 초조하게 지켜보지 않아도 되니 가게 입장에서도 편할 것 같았다.


식사 후 '그래도 상큼한 김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그릇을 반납하기 직전에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카로니라고 생각했던 밑반찬을 먹어보았다. 사실 이 밑반찬은 마카로니가 아니라 혀 끝이 찡할 정도로 상큼한 타르타르소스였다. 그럼 그렇지. 폭 좁은 그릇을 내놓을 정도로 세심한 식당이 이걸 놓쳤을 리가 없지.


자존심 강한 식당과 자존심 강한 손님의 대결 결과는 식당의 완승이었다. 식당은 다 계획이 있었고, 손님은 편견과 습관의 방해로 그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외국에서 한식을 파는 예능을 보니 비빔밥을 처음 먹는 외국인들은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샐러드 먹듯이 채소 따로, 밥 따로 먹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비빔밥은 비벼 먹는 거라고 우아하게 유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콤한 샐러드 소스 대신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게 유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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