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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Jan 10. 2022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랍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글을 15개나 썼다. 제대로 된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브런치를 3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기장을 만들어가는 마음으로 솔직하고 편하게 쓰자.', '똥을 싸도 창작이다.'라는 마음으로 짧고 가볍게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글을 쓰는 것은커녕 글을 읽는 것도 싫어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는 일기를 쓰는 나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나에게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곧 형벌이자 노동이었다. 시험공부할 때나 읽게 되는 참고서나 교과서가 내 독서 경험의 전부다.

 또한, 나에게 일기는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작업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새하얀 일기장을 보고 있으면 내 머리도 하얗게 변했고, 겨우 꾸역꾸역 써놓으면 "엄마를 미워하면 안 돼요!"라는, 시뻘겋게 단호한 담임교사의 글씨가 내 일기장을 덮었다. 행여나 일기장을 놓고 오면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회초리를 맞고 손들고 서 있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일기를 검사하는 사람이 없어지자, 나는 드디어 환호성을 질렀다. 일기라는 형벌에서 해방된 것이었다. 내 생각과 감정들을 진술하라고 강요하고, 내 생각과 감정들을 훔쳐보고, 비평하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해방감과 함께 나는 그동안 강제로 오픈해야 했던 내 생각과 감정의 문을 닫아 자물쇠로 잠갔다. 소셜 미디어에 내 생각과 감정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친구들이 참 신기했다.

즐겁게 잠근 문

 한 동안 내 생각과 감정을 없애는 것이 유리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꽤 성공했기 때문에 매우 최근까지도 내 생각과 감정들은 내 갈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 내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고 정리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는 직감이 쓰나미처럼 다가왔다. 자물쇠의 비밀번호는 오래전에 까먹었으니 변변찮은 비상망치로 문을 부숴야 했다. 6개월이 살짝 넘는 기간 동안 받은 심리상담에서 나는 이 두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방금 무슨 생각하셨나요?
방금 무슨 감정이 지나갔나요?

 

 하지만 제대로 대답한 적은 손가락에 꼽는다. 감정과 생각이 있다는 인지를 하지 못했을뿐더러 인지를 했더라도 이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받아 쥔 감정 카드들을 보고 드디어 나는 내 감정들을 봐버렸고 그만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그 카드들의 이름은 수치심, 모멸감, 죄책감, 분노, 슬픔이었다.


왜 본인이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세요?
대답을 하지 못한 이 상담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들은 6개월 내내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나를 돌보지 않고 그런 감정과 생각들을 바보같이 숨기고 살았다는 죄책감과 이미 늦었다는 다급함에 또다시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괜찮은 척을 한 채 상담을 종료하고 일상을 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주저앉았다. 나를 다시 일으킨 것은 글에 담긴 도움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못나서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쉬고, 도움을 요청하고 움직이세요.
-지금은 이름을 잊은 감사한 블로거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프티 피플> 중 작가의 말에서.
감정과 생각이 피었습니다

 감사한 목소리 덕에 일어설 수 있었고 이제 상담에서 받았던 질문들의 답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내 감정과 생각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내 목소리로 일기장을 쓰고 싶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기장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안 하던 짓을 해보니 내가 해오던 짓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의 뒤죽박죽 일기장을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하시는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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