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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Mar 02. 2022

일회용 관계

친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미 직면할 건 다 직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받으면 대답을 못하는 질문들이 아직도 있다. 상담받을 때에도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 질문 중 하나는 가족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이 걱정인지도 모른 채 상담실을 찾아 심리검사를 받았을 때에도,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에도, 처음 병원에 갔을 때에도, 가족에 대한 질문은 반드시 있었다. 부모님, 형제자매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답이 잘 안 나온다. 다른 질문에는 당황하지 않는데, 가족이 키워드로 들어간 질문을 받으면 당황해서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독서모임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특히 가족에 대한 질문이 나에게 주어졌는데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족 환경이 지금의 즐거운유목민님을 형성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최근에 질문받고 대답하는 것에 거침이 없어졌는데 이상하게 말문이 턱 막혔다. 나도 모른다고 얼버무리고 여러 가지 가설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대답을 마무리했다.


 나의 주저함과 무지를 잠깐 들여다보니 가족과의 대화를 잘하지 않고, 가족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나 보다. 왜 나는 가족보다 처음 만난 사람이 더 편할까. 왜 한 사람을 자주 만날수록 불편해지는 걸까. 사람과 친해지기 시작하면 미래의 갈등과 헤어짐이 걱정돼 무서웠을까. 나에게는 친한 친구가 있을 리가 없다는 자기 암시 때문인 걸까. 그래서 금방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당연한 환경에서 사람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연락처는 주고받지 않지만, 기꺼이 나를 말하고 기꺼이 상대방을 들어주는, 그리고 만난 자리에서 기꺼이 헤어지는 사람들을.


 곧 헤어질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비로소 나의 진심을 꺼내는 내 모순은 언제쯤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 바보 같아서
사랑한다 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에
슬픈 나날들이 두려워서 인가 봐

-태연 <만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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