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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Jan 09. 2018

환기하다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 한국어문기자협회 발행<말과 글> 中

이 글은 필자가 한국어문기자협회에서  발행하는 <말과 글> 2017년 봄 호에 기고한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바라는 국민들의 촛불이 해를 넘겨 불타오를 때였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그렇게'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넘어 잘못된 것을 국민의 힘으로 직접 바꾸어가야한다는 절박함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때였다. 지난 몇 년 간 나라같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왔다는 '자괴감'매 주말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백성에서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을 느끼는 '자긍심'을 번갈아가며 가질 때였다. 마음의 환기가 필요했던 때, K-pop 의 오늘과 어제의 단면을 살펴봤다.      





잠시 환기(換氣) 좀 하자. 방안 가득한 탁한 공기 대신 창 열고 바깥 공기 좀 마시며 더불어 정신적 환기 좀 하자. 우리 사는 이곳, 대한민국에 켜켜이 쌓인 검은 먼지가 쾨쾨한 냄새와 함께 여기저기서 피어올라 숨을 쉬기 곤란할 정도이나, 잠시나마 시공간을 달리하는 창을 열고 콧구멍 들이 내밀어보자.

먼저 동시대 LA로 향해 있는 창을 열어본다.  


5년 누적 관객 수 23만 6,000명
2016년 한 해 세계 5개 도시(LA, 뉴욕, 파리, 아부다비, 도쿄) 관객 수 16만 9,500명
관객 연령층의 74%가 17세 이하부터 24세까지의 밀레니엄 세대
관객 중 비아시아권 미국인의 비중이 60%


C기업이 미국 LA에 현지 법인을 두고 지난 5년간 추진해 온 ‘KCON’ 행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K-POP이라 이름 붙여진 우리 대중가요의 인기에 힘입은 대형 콘서트 진행뿐 아니라, 우리 드라마, 영화, 패션, 음식, 뷰티 등을 소개하고 한류를 종합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세계인들에게 제공했다. KCON 실무진들은 해마다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가슴 뭉클해하며 일 해왔다고 한다. K-POP 마니아들의 관심은, 안방에 있는 우리 예상과 달리, 특정 아이돌 그룹들에만 집중돼 있지는 않다 한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그들의 입맛에 맞는 뮤지션을 먼저 알아보고 초청을 원하기도 하고-딘(DEAN)이 그 주인공으로, 2016년 LA KCON에 출연할 당시, 그 이전 해에 실시한 KCON페이지 설문 등에서 주목받아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인기가 급상승하기 전 특정 노래의 진가를 느끼며 해당 뮤지션과 관계자들이 경악할 만큼 ‘떼창’을 해냈다고도 한다.( Zion.T의 ‘양화대교’가 바로 문제의 특정노래였다. Zion .T가 <무한도전>에 출연하기 전, 이른바 대중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전, 현지 팬들은 이미 ‘양화대교’를 함께 따라 부를 정도로 Zion.T에게 열광했다고 한다. LA에서 수만 명이 외치는 서울의 ‘양화대교’라니! 전율이 느껴질 만도 했겠다.)

두 딸을 위해 매년 덴버에서 약 1,600km를 운전해 LA로 온다는 허름한 옷차림의 백인 아저씨와 나눈 대화에서는 자신들이 준비한 행사의 위력을 새삼 느꼈단다. 한류의 발원지인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느끼기 어려운 희열일 것이란다.


한류를 일으킨 대중예술인들과 기꺼이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세계인들 덕분에 뿌듯함을 곁들여 잠시 시원한 숨 한줄기 들이켠다.          

LA의 KCON2017 중 엠카운트다운 공연 전경 : 사진출처 CJ E&M 홈페이지


시간을 거슬러 1959년 라스베이거스로 나 있는 창을 열어 본다.

선더버드 호텔의 유명 쇼 프로그램인 ‘차이나 돌 레뷔(China Doll Revue)’ 무대에 선 세 명의 10대 소녀들이 보인다. “한국에서 온 김시스터즈입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가 싶더니, 각기 색소폰, 베이스, 드럼 연주까지 능숙하게 해낸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한국의 앤드루 시스터즈’라 불렸던 그녀들이 세계적인 대중음악인으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다. 점차 그녀들은 춤과 노래 실력뿐 아니라 가야금, 장구, 기타, 트럼펫, 아이리쉬 백파이프 등 수십 가지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재능을 뽐내며 ‘김시스터즈’라는 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세련된 화음과 신명나는 무대 매너로 당시 미국 노래뿐 아니라,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 등의 우리 민요도 무대 레퍼토리에 곁들여 미국 관객들의 눈과 귀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전쟁을 겪은 고국에서 미군들을 위한 무대를 통해 이름을 얻었던 어린 소녀들은 그렇게 미국 본토에 당당히 진출, ‘라스베이거스의 샛별’을 넘어 도미 9개월 만에 당시 미국 최고의 버라이어티 쇼로 꼽히던 CBS TV <애드 설리번 쇼>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듬해인 1960년 리메이크 곡 ‘찰리 브라운’ 을 타이틀로, 두 곡의 한국어 노래 ‘아리랑’과 ‘봄맞이’를 포함해 총 12곡을 수록한 첫 음반을 발매했고, 이 음반의 ‘찰리 브라운’은 1962년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르기도 한다. 이후 미국을 기지 삼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여러모로 변방이었던 대한민국 출신으로서, 세계 대중음악사에 그들의 흔적을 명확히 새겼다.


1963년 3월 21일 <경향신문>에 실린 ‘세계무대 주름잡는 보칼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다.   


가요나 「재즈·싱거」들이 혼란상태를 이루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지 못한 채 외국의 「포퓰러 송」을 흉내 내는 것이 고작이다. 이를 시정하고 「카버」하는 길을 「솔로」보다 중창을 하는 「보칼•팀」을 길러내는 데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한국의 「그렌•밀러」 송민영씨가 육성해낸 것이 「김시스터즈」였다. “외국 것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소화시킨 다음 그것을 세계수준에까지 이끌어 올린다”는 그의 계획이 들어맞았다. 숙자,민자,애자의 「김시스터즈」는 이제 한국이 낳은 세계적 「보칼•팀」 이 되었다. 「김시스터즈」가 모방에만 그쳤다면 세계무대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우리 민요의 흥겨운 가락을 그들에게 들려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김시스터즈’의 시작은 1951년 부산으로 향하는 피난 열차 안에서였다고 한다. 열 살을 갓 넘긴 소녀들의 노래 실력은 김시스터즈의 멤버 숙자와 애자의 어머니이자, 민자의 고모였던 가수 이난영의 작품이다. 이난영은 전쟁 당시 ‘목포의 눈물’ 노래 한 번에 주먹밥 2개를 얻어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등, 납북된 남편-1930년대부터 활발히 활동하며 대중음악계의 천재로 불리던 김해송이다 -을 대신해 7남매를 홀로 키워내야 했다 . 해방 전부터 인기를 누리던 가수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어린 자녀들에게 팝송과 다수의 악기를 가르쳐 미8군 무대를 거쳐 미국 본토에까지 진출하게 하는 대단한 역량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참혹했던 시기를 지내야 했으나 타고난 재능과 끼, 거기에 절박함이 어우러졌을 노력으로 세계에 통할 대중음악인이 된 김시스터즈와 그녀들을 일궈낸 어머니 이난영에 대한 생각에 서늘한 바람 한 자락이 창으로 들어선다.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김시스터즈와 이난영(1963). 사진 츨저: 네이버 이미지


이쪽저쪽 창을 내어 들여다보니 바람길이 제법 통하는 것을 느낀다. 한류라는, 세계를 향한 우리 대중문화의 흐름이 결코 짧은 시간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이런저런 현실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도도한 흐름을 갖고 생명력을 이어와 세계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왔음을 새삼 환기(喚起)한다. 상상이나마 창 열고 환기(換氣)한 덕분일까, 우리 정치․사회의 흐름도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갖고 잘 가고 있겠거니 현실의 비약도 서슴지 않으며 깊은 호흡을 내쉬어본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어지러운 방 안을 둘러본다. 이리저리 크게 뭉쳐져 돌아다니는 시커먼 먼지뭉텅이도 치워야겠고, 자잘한 쓰레기도 꼼꼼히 집어내야겠다. 계절로도, 역사적으로도 진정한 봄을 맞아 대청소 한판 크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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