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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Oct 30. 2017

노래, 말하다

 '나니아 옷장 속 대중음악사'-한국어문기자협회 발행지 <말과 글> 중

이 글은 필자가 한국어문기자협회 발행지인 <말과 글>에 기고하고 있는 칼럼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로,  해당 잡지의 편집자에게 양해를 구해 브런치에도 함께 싣게 됨을 밝힙니다. 이 글은 2016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1년 전, 지난 몇 년간의 알 수 없었던 '답답함'과 '막막함'의 실마리를 알게 된 저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가능할까 싶었던 일을 해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속속들이 드러나는 일들에 계속해서 놀라고 어이없어 하고 있지만, 1년 전 그 '동력' 그대로, 아니 더욱 굳건히, 그동안 엉키고 헝클어진 채 더러웠던 우리 사회의 실타래를 바로 잡아 제대로 감아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은 가까운 우리 역사 속에서 노래에 의지해 한 시대 시대를 넘어왔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10년 단위로 나눠, 몇 곡을 뽑아 들어보고 가사를 곱씹어보며 썼던 글입니다. 공부하고 조사하며 가슴이 무거워져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사이사이 말 그대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썼던 글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조금은 담담히 읽히는 것을 보면, 나마 다행입니다만, 아직은 마지막 문장을 '희망적'으로 수정할 수 없음 여전히 답답합니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귀국선> 손노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 노래, 1946.

     만 16세의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다 해방 후 보리가 파랗게 올라올 무렵 부산 땅을 밟은 소녀 이용수. 기차를 타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가는 내내 누가 또 잡아갈까 몸을 웅크리고 구석에 숨어 울며 갔던 그 소녀는 이제 90세를 앞둔 할머니가 되었다. 25년간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원했지만 여전히 당사국은 외면하고, 우리 정부 또한 이상한 합의를 해버렸다. 해방 직후 유행했던 이 노래를 기억하고 종종 부른다. 하지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귀국선에 오르던 당시가 떠올라 이내 통곡이 터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 보았다 찾아를 보았다 /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간들 /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

금순아 살아만 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되면 /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 보자

 <굳세어라 금순아>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 1953.     

   1953년 피란민이 넘쳐났던 대구에서 생활하던 언론인 출신 작사가 강사랑은, 1951년 엄동설한에 펼쳐졌던 흥남부두 철수상황을 다룬 기록영화를 보고 그 끔찍한 참상을 노래로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오리엔트레코드사 문예부장으로 있던 박시춘은 그의 가사에 노래를 입혀, ‘국제시장 장사치’로 살아가는 노래 속 화자가 머물고 있는 부산 영도 출신의, 당시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가수 현인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전쟁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피눈물이 노래로 응축돼 전후 대한민국 곳곳에서 피어났다.      

 

원통하게 죽었고나 억울하게 죽었고나 /

몸부림 친 삼일오는 그 누가 만들었나 /

마산 시민 흥분되어 총칼 앞에 싸울 적에 /

학도 겨레 장하도다 잊지 못할 김주열 /

무궁화 꽃을 안고 남원 땅에 잠들었네 /

남원 땅을 떠날 적에 성공 빌던 어머니는 /

애처러운 주검 안고 목메어 슬피 울 때 /

삼천 겨레 흥분되어 자유민주 찾으려고 /

학도 겨레 장하도다 잊지 못할 김주열 /

무궁화 꽃을 안고 남원 땅에 잠들었네

 <남원 땅에 잠들었네> 차경철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 1960.     

    1960년 4월 어느 날, 직물회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작사가로도 활동하던 25세의 청년 차경철은 자유당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어린 학생의 죽음에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레미레코드사에 들러 그 회사 사장이자,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한복남과 노래를 만들기로 한다. 마침 그날 석간신문에 실린, 김주열 열사의 운구 소식을 소재로 10분 만에 노래를 짓는다. 1960년 늦여름에 나온 이 노래는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어 당시로서는 많은 수의 음반이 팔리기도 했으나, 이듬해 5·16 쿠데타 이후 여러 번의 수정을 강요당하다 결국 금지곡으로 묶이게 된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이슬> 김민기 작사 작곡, 양희은 노래, 1970.   

     2016년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은 ‘위대한 노래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해 온 밥 딜런이 되었다. 그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가로 김민기가 꼽힌다. 창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해석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긴 밤’을 지나오는 동안, ‘거친 광야’로 향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불리며 대한민국 가요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황석영 작사, 김종률 작곡, 1982넋풀이-빛의 결혼에 수록.      

   1980년대를 거치며 민중들의 노래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갖고 위엄을 갖추게 된 노래임에도, ‘제창이냐 합창이냐 그것이 문제’가 되어 ‘산 자’ 들의 가슴과 머리를 다시금 뜨겁게 만드는 노래가 되었다. 2016년 가을, 광장에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할 때에도 어김없이 들렸다. ‘새날’이 왔다고 생각했던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느끼는 ‘부채의식’이 새삼 상당했다고 한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

굳세게도 서 있으니 /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위처럼> 유인혁(본명:안석희) 작사 작곡, 노래패 '꽃다지’, 1992.       

   1992년부터 집회 현장뿐 아니라 대학생들의 OT나 MT와 같은 행사에서도 율동과 함께 애창됐던 노래였다. 시도 때도 없이 너무도 많이 불러대, 학생들 스스로 ‘우리’가 금지곡으로 지정해 버리자는 농담을 하게 했던 노래이기도 했다. 이 노래를 끝으로 ‘우리’ 대부분은, 함께 마음 모아 부르던 노래들을 잊은 채 살아갔다. 불혹을 넘긴 그들이,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이 이 세상의 주춧돌이 되어 바위처럼 살아내고 있을지는 ‘밴드’나 ‘단톡방’을 이용한 ‘취중대화’를 통해서나 확인이 가능하리라.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낯설은 풍경들이 지나치는 후의 버스에서 깨어 / 

방황하는 아이 같은 우리/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벌써 지나친 건 아닌지 /

모두 말하지만 알 수가 없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졸업> 덕원 작사작곡, 브로콜리 너마저, 2010.     


   2011년 6월 서울대학교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60년대 우드스탁을 닮은 ‘본부스탁’을 잔디광장에서 진행했다. 본부스탁에서 울려 퍼진 이 노래는 서울대 너머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 ‘이 밋!친 세상에~ 이 밋!친 세상에~’를 따라 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이 노래는 KBS에서 방송금지곡이 되었고, 서울대학교는 그해 12월 법인화되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했던가. 진짜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특히, 서울대학교 법학학사 출신의 팔짱 낀 채 웃고 있는  ‘선배’에게 묻는다. “이 미친 세상을, 아니 당신을, 대체 어찌하니껴?”    

   

친구들은 지금쯤 / 어디에 있을까 /

축 처진 어깨를 하고 / 교실에 있을까 /

따뜻한 집으로 / 나 대신 돌아가줘 /

돌아가는 길에 / 하늘만 한 번 봐줘

손 흔드는 내가 보이니 / 웃고 있는 내가 보이니 /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 약속 하나만 해 주겠니 /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 살아내 주렴

꽃들이 피던 날 / 난 지고 있었지만 /

꽃은 지고 사라져도 / 나는 아직 있어

손 흔드는 내가 보이니 / 웃고 있는 내가 보이니 /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 약속 하나만 해 주겠니 /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 살아내 주렴 

 <아직, 있다> 루시드 폴 작사 작곡 노래, 2015.     

   2014년 4월 16일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운명을 달리한 친구들을 기리며, 루시드 폴이 <누군가를 위한>이라는 앨범에 담은 곡이다. 다시 두 번의 봄이 오고도 한참 지나버린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죽음에 먹먹하고 답답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노란 나비가 되어버린 그들이 당부한다.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달라고. 그리고 넘어져 침몰해가던 대한민국을 바로 잡아달라고.  

    

내 몸에 날개가 돋아서 어디든 날아갈 수 있기를 /

내 꿈에 날개가 돋아서 진실의 끝에 꽃이 필 수 있기를 /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려 하고 /

고장난 시계는 눈치로 돌아가려 하네 /

no way no way and no way / 나는 길을 잃고 /

no way no way and no way / 다시 길을 찾고 /

no way no way and no way / 없는 길을 똟다 /

no way no way and no way / 길가에 버려지다 /

내 몸에 날개가 돋아서 무너지는 이 땅을 지탱할 수 있기를 /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기를/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려 하고 /

고장난 시계는 눈치로 돌아가려 하네 /

no way no way and no way / 나는 길을 잃고 /

no way no way and no way / 다시 길을 찾고

no way no way and no way / 없는 길을 똟다 /

no way no way and no way / 길가에 버려지다/

 <길가에 버려지다> 이규호 작사 작곡, 이승환 이효리 전인권 노래, 2016.     

   2016년 가을, 우리가 믿어왔던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헌법을 통해 다짐된 모든 것들이 대통령을 포함한 몇몇 집단에 의해 완벽히 무너져 있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믿어왔던 ‘대한민국’이 아니었음을 많은 이들이 자각하게 되었다. 분노와 각성은 국민들을 광장으로 모았다. 멈춰선 대한민국의 시계를 돌리려 촛불을 들고 마음과 목소리를 모았다. 2016년 11월 15일 현재, 길가에 버려진 우리들로선 진실의 끝에 꽃이 필지, 정의의 비상구를 찾을 수 있을지 여전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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