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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Jul 09. 2018

그 날의 B.G.M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한국어문기자협회 발행 <말과 글> 中

'그 날' 의 감흥이 수년 전의 것으로 느껴졌으나, 돌아보니 겨우 지난 늦봄의 일이었다.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소리'로 기록해보았다.

장맛비 내리는 오늘, 다시금 도보다리에서 들려오던 새 소리를 기억하며 옮겨본다.  






2018년 4월 27일 대한민국은 남과 북 두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공동취재단의 영상을 통해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에 숨죽여 집중했다. ‘11년간 하지 못했던 일을 100여일 만에 이뤄’ 성사된 만남은 12시간 정도 진행됐고, 그 시간만큼은 한 외신기자의 표현대로 모든 세계인이 ‘Korean’이 되어 분단국인 Korea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전개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정상회담의 마무리를 장식했던 짤막한 공연을 포함한 마지막 20분의 ‘소리’를 중심으로 그 날을 기록해 두려한다. 드라마와 영화의 스토리는 잊어도 그 안에서 흐르던 음악을 통해 순간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듯, 언제고 세월이 흘러 그 날이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연 날로 제대로 자리매김할 때, 그 날 들렸던 음악과 모든 소리와 늦봄의 고운 바람결을 기억하며 그 날의 감흥을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어서이다.


만찬을 끝낸 양측 정상 내외가 ‘평화의 집’에서 나와 환송공연 관람을 위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단상에 마련된 자리에 앉기까지, 판문점 일대를 채운 소리는 양측 참석자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성. 그리고, 전자 기타 소리로 시작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였다.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한 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 걸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전 인류가 살고 죽고 처절한 그날을 잊었던 건 아니었겠지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줘

(노래의 이 부분에서 두 정상 내외는 착석했고, 노래 소리는 줄어들며 없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4년에 발표한 3집에 통일을 염원하는 가사와 록 형식의 <발해를 꿈꾸며>를 수록했다.  뮤직비디오를 철원 노동당사에서 찍었던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이어 “조명 다 아웃입니다.”라는 무대감독의 말로 여겨지는 목소리가 공동취재단의 카메라 오디오를 타고 들어온 이후 바로 암전. 바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웅장한 선율과 힘찬 피아노 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휘어잡으며 터져 나온다. 그 순간, 화면으로 활용된 평화의 집 건물 외벽과 무대 위 조명이 음악에 맞춰 빛을 뿜어낸다. 이내 잠시 잠잠함과 암흑이 흐른다. 그 적막을 깨고 처음 들린 소리는 청아한 대금 소리와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더해진 아리랑. 두 악기가 리드하는 가운데, 차분한 국악연주와 현악기 소리, 합창소리가 차례로 아리랑 선율에 함께 얹히기 시작한다. 정재일 음악감독의 힘찬 피아노 연주, 국악과 현악기의 짙은 소리, 하늘을 뚫고 나갈 듯한 태평소 소리, 평화의 집 2층 테라스를 활용한 높은 공간에 등장한 장구와 북, 징, 꽹과리 연주자들의 격정의 소리가 합쳐져 화려함이 극대화된다. 이어 잦아드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잠시 들려오는, 대금으로 연주되는 ‘새야새야’. 연이어 현악이 이끄는 차분한 ‘고향의 봄’, 그 위에 피아노 소리와 합창이 조용히 어우러진다. 평화의 집 외벽에는 노란 나비가 음악에 맞춰 날갯짓을 시작한다. 피아노와 합창으로 점차 풍성해지는 ‘고향의 봄’에 맞물려 이내 모든 악기와 합창이 힘을 보태 다시금 활기찬 아리랑을 들려준다. 그렇게 모든 소리가 클라이맥스를 이뤄내고 ‘하나의 봄’은 소리와 글자로 환하고 강하게 새겨지며 끝을 맺는다.


연주자들에게 보내는 박수와 환호가 끝난 후 바로 흐르기 시작한 곡은 ‘one dream one korea’. 평화의 집 외벽을 채우고 있는 영상에 역시 이 노래가 감흥을 더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두 정상은 이를 2분 23초 동안 지켜보았다. 그 날 하루, 둘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은 사진을 엮은 영상이었다. 나란히 서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우린 다른 적이 없어요 잊지 말아요 그 사실 하나만
우린 충분히 그리워했죠 지금 만나요 나 가고 있어요       
한번 더 우리 또 기억해요 한번 더 우리 노래 불러봐요
하나되는 그날 가슴 벅차 오를 꿈을 위해


I want you 자 손을 잡아요 그대와 나
오오오오 one dream one for Korea on and on and on
오오오오 one dream one for Korea on and on and on
소리내 말한 적 있나요 우리의 소원 그 소원은 통일
낯설지 않게 remember this once more
그날의 그 아침도 눈 부실테죠
한번 더 우리 또 기억해요(기억해요)
한번 더 우리 노래 불러봐요(불러봐요)
하나되는 그 날 가슴 벅차 오를 꿈을 위해
I want you 자 손을 잡아요 그대와 나
오오오오 one dream one for Korea on and on and on
오오오오 one dream one for Korea

(환송 인사를 나누기 위해 객석을 내려와 두 정상 내외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내 곁에 지금 한 자락 바람이 불어/ 저 멀리 그대를 스쳐온 그 바람
이렇게 가까이서 그대가 그리운 맘/ 나 가고 있어요(나 가고 있어요)
그대도 오네요 오우 워/ 이것만은 틀리지 않아요(하나인걸)
우리는 결코 다른 적 없어요/ 조금씩 서로 한걸음 또다시 만날 거란 걸
that we want to be a family again/ 한번 더 우리 또 기억해요
한번 더 우리 노래 불러봐요/ 하나되는 그 날 가슴 벅차오를 꿈을 위해
I want you 자 손을 잡아요 그대와 나/ one drem one for Korea

이후 1분여 간 양측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또 1분여 간 두 정상 내외가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그 날의 만남,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 동안 계속해서 깔렸던 one dream one Korea, 분주히 들리는 취재진의 사진 찍는 소리, 양측 참석자들의 박수소리, 차가 떠나기 직전 들리는 “받들어 총!”, 자동차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그렇게 그 날의 모든 일정은 이런 소리들과 함께 끝이 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래로, 남과 북이 모두 알고 - 1947년 만들어진 이 노래는 1950년부터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자로 참석한 임수경이 불러 북한에서도 통일가요로 널리 퍼지게 됐다. 북한에서는 이 노래 제목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며 가사도 약간 다르고 3절까지 있다.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와 함께, 이념 갈등이 없는 몇 안 되는 남북 공통의 노래이다.- 전 세대에 익숙한 ‘우리의 소원’은 왜 그 날 들을 수 없었을까?


짐작하건대, 그 노래는 좀 더 아껴두고 싶을 것만  같다.

 ‘우리의 소원’은, 1947년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에서 아버지 안석주 선생의 글을 받아 아들인 안병원 선생이 작곡해 처음에는 ‘독립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이 노래는 1947년 2월 28일 오후 2시 종로 YMCA 대강당에서 삼일절 기념 아동음악회에서 합창으로 불려진 직후부터 관객으로부터, 그리고 그 날 오후 5시 30분에 방송을 탄 이후부터는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겨레의 노래’ 가 되었다. (안병원 선생은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소원’이 65년이나 불리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이 노래가 흘러간 옛 노래가 되기를, 통일이 되는 날 판문점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원’ 합창을 지휘하기를 소망했다. 선생은 결국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2015년 삶을 마감하셨다.)

 

우리의 소원 노래비, 청강문화산업대학 잔디광장에 지난 2006년에 세워졌다.


당시, 해방이 된지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진정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만들어지고 불렸다는 그 노래. 이후 ‘독립의 노래’ 가 아닌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으로 바꿔달고 무려 70년이 넘도록 그 가사 그대로 염원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안타까운 그 노래. 그 노래는, 내가 만약 관련 공연의 기획자라면, 가사를 바꿔, “통일을 이뤘다!”로 전 국민이 다 함께 목 놓아 기쁜 마음으로 같이 부를 수 있는 날을 위해 당분간은 고이 ‘모셔두고’ 싶다.  


그동안 우리에게 통일은 저 멀리 잡히기 힘든 ‘소원’이었다면, 이제 우리에게 통일이란, 개마고원으로 떠나는 트레킹을, 평양의 냉면을 직접 가 먹을 것을, 기차로 출발하는 유럽여행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계획’이라 믿고 싶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잡음과 소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두 정상과 양측이 힘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 힘에 부칠 때면 그 날 환송공연의 음악에서 받은 메시지와 감흥을 떠올려주기를 기대한다. 또, 그 날 낮에 두 정상이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보여준, 들리지 않았으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진지한 대화에, 새들과 바람, 햇살이 깔아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B.G.M을 기억하며, 국민들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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