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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Apr 09. 2021

위문공연을 역주행 해보다

한국어문기자협회지 <말과 글>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 기고문

    ‘역주행’이 화제가 되고 있다. 도로에서의 역주행이라면, 정해진 주행 방향에 순응해 달리고 있는 운전자에게 예기치 못할 사고를 만나게 할 위험한 일이겠고, 축구에서 상대의 골대가 아닌 우리 팀 골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공격수의 역주행은 두고두고 축구 팬들의 뇌리에 박혀 가슴을 쓸어내릴 장면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뒷걸음질 치는 각종 정책들의 역주행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로 자리매김할 일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대중문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주행은, 순차적으로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일만 남은 무언가가, 어떠한 것을 계기로 짜릿하게 살아나 대중들의 사랑을 늦게라도 듬뿍 받는, 말도 안 되게 황홀한 일을 일컫는다.

    2021년 봄의 시작과 더불어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던 팀의, 그것도 4년 전 곡이, 한 유튜버에 의해 관객들의 반응과 댓글을 더해 편집돼 공개되고, 그것이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타고 순식간에 상승세에 오르며, 흔히 말하는 ‘대중 픽(pick)’, 즉 많은 대중들이 호응하고 반복해서 검색을 하며 그 상승세를 가파르게 이어나가는 흐름을 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각종 대중매체는 섭외1순위로 ‘브레이브걸스’를 찾고 있고, 음원순위에서도 ‘롤린’은 처음으로 순위권에 진입함은 물론 1위를 기록했다.


브레이브걸스의 백령도 공연 (유튜브 화면 캡처)

    역주행이 시작된 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며, ‘브레이브걸스’를 둘러싼 다양한 서사가 덧붙어 이어지고, ‘롤린’의 음악적 평가도 부각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애초 그들의 무대를 담은 영상이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섰던 무대의 특별함도 한 몫을 했다.  

해당 콘텐츠에 주로 사용된 그들의 영상은 주로 기존 방송 무대가 아닌 ‘위문 열차’란 제목의 국방TV 영상이었다.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을 부르며 춤과 열창을 선보이는 동안 관객석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군복 차림의 남성들이었고, 그들은 굵은 함성으로 “롤린롤린롤린 헤이”를 외쳤다. ‘롤린’의 포인트 안무인 일명, ‘가오리춤’과 ‘허수아비 춤이 나오는 순간에는 다 같이 일어나 흙먼지를 일으키며 신나게 흔들었다. 군인들의 이러한 호응 장면이 재미있는 댓글을 낳았고, 그것들이 다시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코믹한 포인트로 소비되면서 노래와는 또 다른 인기를 끌게도 했다.

    같은 영상을 보며, 누군가는 그 무엇보다도 그저, 1년 넘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의 공포도 없이, 흥겨운 노래를 매개로 무대 위 아래 모두가 즐거운 분위기로 하나가 되어 목청을 높일 수 있는 그 광경에 끌렸을 테고, 누군가는 사회와 고립된 채 국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야 했던 멀지 않았던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며 당시의 ‘군통령’이었을 또 다른 가수들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정주행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른바 ‘위문 공연’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번 ‘롤린’의 지난 역사를 써내려갔던 무대는 현재 국방 TV에서 방송되는 ‘위문열차’라는 프로그램으로, 국방홍보원 자료에 따르면, ‘위문열차’는 1961년 10월 27일 첫 방송이래 매주 격오지는 물론 최전방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군부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국군장병들을 위한 공연을 펼치고 이를 방송으로 담아냈던 공개방송 형식의 쇼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무대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탓에 작년 1월~6월까지는 아예 중단되었다가 작년 7월부터 랜선 공연 형식으로 바뀌어 다시 진행되고 있다.

    좀 더 많이 거슬러, 우리 대중문화 역사 속 위문공연의 시작을 살펴보면, 역시 전쟁의 역사와 그 시작을 함께 한다. 일제 시대였던, 30년대 말부터, 신문에서 ‘군인가족위안연주회’라든가 ‘황군위문연주회’등의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해방 이후인 40년대 말부터는 군인 또는 경찰이 있는 현장을 찾는 예술단체나 학생들의 활동을 ‘위문공연’이란 이름으로 부르며 기사화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三八線警察官慰問 羅美羅歌劇團興行>

                                                                                                          동아일보 1949.04.30.


장단철도체육회주최인 장단제일회 음악콩쿨대회에 협조하기 위하여 장단에 온 라미라(羅美羅)가극단 일행은 마의 三八선 접경제一선에서 침식을 잊고 경비에 맹활동하는 경찰관을 위문하고자 지난 二十四일부터 二일간 눌목 두매 고랑포 등지를 역방하여 경찰관 및 주민에게 위문공연을 하였다고한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부터는 위문공연의 횟수와 규모가 확대된다. 위문의 대상은 주로 미군이 주축이 된 16개국의 파병군이었고, 주체는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위안과 주둔지의 안내 등을 담당하기 위해 미국 각 종교 단체가 설립한 봉사기관인 USO(United Service Organizations)였다. USO는 당시 인기 있는 진행자였던 밥 호프(BoB Hope)를 비롯한 미국의 연예인들을 세계의 전장으로 보내 위문공연을 실시했다. USO의 연예역사 Time Line의 기록을 보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대구에 영화배우 에롤 플린(Errol Flynn)이 와 부상병들과 함께 했던 사진기록이 있으며, 1952년에는 USO가 연예 위문공연(tuor)를 늘려 한국의 각 지역에서 수백 번에 걸쳐 공연을 펼쳤다는 기록도 있다. 1953년에는 USO의 ‘캠프쇼(Camp Show)’가 한국의 모처(somewhere)에서 ‘매일’ 진행되었다고도 전한다. 1954년에는 당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마를린 몬로(Marilyn Monroe)의 내한 위문공연도 이뤄진다. USO의 기록에 따르면, 1954년 2월, 마를린 몬로가 조 디마지오(Joe Dimaggio)와 결혼한 직후 한국 기지를 찾았으며, 마를린 몬로가 당시 무대에서 그녀에 대한 군인들의 반응에 자신이 진짜 스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USO가 주축이 되었던 위문 공연은 점차 내국인들에게도 그 무대에 설 기회를 주며, 전시의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음악인들의 중요한 경제활동무대가 되어갔다. 그 시작 시점은 1952년으로 추정되며 당시 한국 연예인들이 미군을 위한 공연을 하려면, 속칭 ‘매니저’로 불리는 사람에 의해 즉석에서 구성되는 악단의 일원이 되어 군용 트럭을 타고 미군 기지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던 것이 전후, 미8군을 중심으로 한 미군 기지 쇼, 즉 ‘미8군 쇼’의 무대에 서는 우리 음악인들이 점차 많아져, 1954년 3월에 개최된 ‘한국대중음악 발기인 총회’ 당시 참석 인원 300여 명 중 미8군쇼 계통의 종사자가 71%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에는 미8군 쇼가 한창 절정을 이루어 산하 클럽 수가 264개에 이르러 쇼단의 수는 20개 팀에, 악단만으로 고용된 팀은 50개에 달할 정도였다.

    한편, 1958년 12월 13일 동아일보에서 다룬 다음의 기사를 보자. 제목은 “날씨 춥다고 거절, 「라디오」배우들 주한미군 위문공연”이다.


    한 때 한국에 주둔한 미군병사를 방문하였던 「할리우드」의 「스타」들은 이제 더군다나 추운 겨울철에 다시 한국 땅을 방문하기를 꺼려하고 있으나, 금년에는 미인들과 음악인들을 이끌고 열 두 번째의 한국 주둔 미군 위문 여행을 가지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라디오」흥행에 종사하는 「자니·그랜트」씨- 「그랜트」씨는 「한국에 16일간 있을 것인데 매일 2회씩 「쇼」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다시 「우리 일행은 17명인데 이중 10명은 멋진 재주를 가지는 여자들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USO 주축의 위문공연은, 한창 때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를 찾을 만큼 미국 연예인들이 위문공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수준급의 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우리 대중음악인들의 공연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기에, 미군을 위한 무대는 내국인들이 펼치는 무대만으로 충분히 바뀌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매 분기 별로, 주한 미 문관들에서 차출되어 적어도 미국에서 음대를 졸업했거나 성악이나 현악기에 달하는 전반적인 음악을 통달하는 실력을 갖춘 7인 이상의 심사 위원에 의해 오디션을 보고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던 쇼단의 공연이었던 만큼, 그 공연 수준은 가히 미국 본토의 대중음악 공연과 비교해도 매우 뛰어났다. 미8군에서의 이러한 무대공연은 좁게는 이후 우리 군인들을 위한 위문 공연에도 영향을 미쳤고, 넓게는 우리 대중음악사 전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61년, ‘위문 열차’의 시작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힘겨운 군인들을 위한 무대였을 것이고, 전쟁의 위협이 늘 가까이에 있었던, 사회와는 완전히 격리된 채 생활해야 했던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것이다.

2021.4.1 국방TV <위문열차> 홍보용 포스터

   50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분단 상태인 국가에서 태어난 2015년 이후 군필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했던 팀의 청량한 노래를 ‘위문 공연’ 무대에서, 또는 선임자들의 입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된다. 군인들은 먼 길을 달려와 어찌됐든 최선을 다해 무대에 임하는 가수에게 감동을 받았고, 대중에게는 이렇다 할 명성을 얻지 못했던 그들에게 엄청난 호응으로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이 되었던 노래는, 2021년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날개를 달고, 시간을 거슬러 서로를 다시금 만나게 했다. “진심 군 생활하면서 엄청난 활력소가 되었던 곡임. 힘이 되어주는 느낌이랄까, 말로 설명 못하는 뭔가가 있음.”이라는 댓글을 다는 주체와, 음악방송 1위를 하고 전하는 수상소감에 국군장병, 예비군, 민방위를 언급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팀으로 말이다.


   열심히 하는데도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내 인생에도, ‘버티다보면’ 언젠가 그들처럼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역주행 인기를 자신의 일인 양 응원하고 있다. ‘위로’가 필요한 대상, 그리고 ‘방문’이 필요한 대상에, 군인만이 아닌 전 국민이 해당하는 시기이기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아닌가 싶다.

     더불어 여기에 욕심어린 생각을 좀 보태본다. 힘겨운 무명시기를 거치며, 방송 무대가 아닌 위문 무대에 섰던, 최선을 다해 무대에 임하고, 관객이었던 군인들의 호응에 힘입어, 스스로도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던 해당 그룹의 소속사에는 요즘, 청량한 명곡에 ‘꾸덕꾸덕하고 섹시한 뮤비가 웬 말’ 이냐며 ‘상큼한’ 느낌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해 전하는 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단다. 그런 소식을 듣고 보니 내가 느꼈던 불편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의 역주행을 이뤄낸 이들이, 앞으로 용감하게 정주행하며 살아야 할 시대에는 ‘위로’라 이름 붙을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보아도 손색없고, 누구에게도 불편함이 없을 방식의 것이기를 적극적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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