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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Apr 06. 2018

검열을 검열하다

2018년 4월 6일 오후 2시 49분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진행중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김세윤 부장판사가 18가지 공소사실에 대해 조곤조곤 읽어내고 있는 중이다. 물 한모금으로 목이라도 축여가며 읽었음 하는데, 그러지는 못하나보다. 듣는 내 목이 탄다.

18가지 중 하나였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한다.                                                                                                                                                                                                                                         




이런 일이 있었대. 나라에서 창작 공연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거든, 규모가 꽤 큰. 그 사업을 주관하는 공무원들이 심사결과를 보고선, 선정된 것 중에 ‘문제가 되는 작품’이 있다면서 심사결과를 번복해 달라고 심사위원들한테 요구를 하더래. 세 개가 문제가 되는데, 그 중에 특정 작품 하나를 빼주면 나머지는 봐주겠다는 ‘딜’까지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어쨌냐고? 심사위원들은 당연히 거부했다지. 근데,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그 주관 부서의 부장이란 사람하고 무슨 본부장인가 하는 사람하고, 글쎄, 심사위원들한테 꼭 빼달라고 했던 작품, 그 작품의 연출가를 찾아가서는 당신이 지원금을 포기하면 다른 작품들은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원금을 포기해라, 이랬다는 거야. 응? 양아치들이라고? 아이고, 벌써 흥분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 그 연출가는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나봐. 근데, 그 부장이란 사람이 한 심사 위원한테, 그 연출가가 지원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알리면서, 그걸 ‘위’에 보고했더니 “그 연출가를 뭐를 믿고 그냥 말만 듣고 왔느냐. 각서라도 받아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래. 응! 진짜 그랬대. 그러고선 그 ‘위’가 얼마나 위였는지, 결국 다시 연출가를 찾아가서 포기 각서를 받아냈다지 뭐야. 그 때가 6월 22일이었는데, 각서 상 날짜는 미래의 특정 날짜로 해서. 왜 그랬냐고? 끝까지 들어봐. 지금부터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까지 ‘눈 가리고 아웅’ 했는지 설명해줄게. 일단,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대로 지원작들이 발표돼. 그게 6월 29일. 그러고선, 8월 4일에는 누군가 행정시스템에 접속해서 마치 해당 극단 측이 한 것처럼,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포기신청을 입력해. 아까 각서 상 날짜를 미래로 잡았댔지? 그게 7월15일. 그림이 그려져? 그러니까, 일단 지원 선정 결과는 심사위원들이 뽑은 그대로 발표를 하고 나중에 마치, 그 극단이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처럼 해서, 결국 그 작품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게 한 거지. 응? 그거, 작가 협박, 각서 강요, 문서 조작까지 한 거 아니냐고? 응! 그렇지! 이해가 빠르네. 난 몇 번을 들여다보고서야 겨우 이해했는데. 그런 일이 대체 언제 있었냐고? 1987년의 일이냐고? 음, 그게 말이야, 2015년에 일어난 일이야. 그래, 맞아. 네가 아는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예술계의 박근혜 정부 당시 검열문제를 기록하기 위해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검열백서위원회’가 펴낸 소책자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 검열백서 준비1호 : 사건일지와 질문들> p.57~p.60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해당 작품은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는 검열을 어떻게 생각해? ‘검열’이란 말조차 낯설다고? 하긴, 헌재에서 영화 사전 검열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지도 20년이 지났고, 음반사전심의제가 폐지된 것도 1995년 11월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겠네. 음반심의에 대해서는 좀 들어봤지? 그래, 가수들이 음반 내면 사전에 검열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었던 거. 대중가요 검열은 일제 때 시작됐다는데, 짐작하겠지만, 일제가 우리말에 대한, 그리고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검열을 했겠지. 반야월 선생님이 인터뷰하신걸 보니까, 검열 초기에는 레코드 유행가를 1절은 우리말로 하고 2절은 일본말로 꼭 하도록 했다나봐. 그것도 전쟁 말기인 1943년부터는 우리말은 아예 냄새조차도 풍기지 못하게 했대.

광복하고는 어땠냐고? 당연히 일제가 하던 내용의 검열제도는 폐지됐지. 그래도 법에 따라 전시나 계엄령이 선포되는 비상사태 하에서는 검열을 실시할 수 있게 했고. 그랬다가 왜 다시 검열이 살아나고 강화됐었냐고? 일단 좀 더 얘기를 들어봐. 3공화국 헌법에서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다만,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해서는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서, 원칙적으로는 검열을 금지했었어. 그런데, 제4공화국 헌법, 우리가 흔히 유신헌법으로 아는 그 헌법에서는 이 금지규정이 삭제돼. ‘검열을 금지하는 규정’을 삭제한다고. 헷갈린다고? 쉽게 얘기해줄게. 헌법을 고쳐서 검열을 하게 했다고. 이해했어? 이후에도 검열과 관련된 각종 법률들은 헌법에 맞춰 개정을 하면서도 이어져왔고. 그러니까, 60여 년 동안 우리 대중음악인들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없었다고 봐도 돼.

금지곡들은 왜 금지곡들로 묶였었냐고? 그게 참 다양한데, 너 이미자 선생님 알지? 그 분 노래 중에 <동백아가씨>는 22년 동안 묶여 있었어. <동백아가씨>는 ‘왜색’이 너무 짙다고. 그걸 누가 판단 하냐고? ‘공륜’이란 데서. ‘저속’하고 ‘퇴폐적’이라서 금지된 곡들도 있는데, <그건 너>, <미인> 이라는 노래, 너도 알거야? 그래, 그 노래들이 당시에는 ‘퇴폐적’이라고 판단된 노래들이야. 웃기다고? 더 웃긴 얘기 해줄게. 아니다, 이건 네가 직접 당시 얘기가 담긴 기사 - ‘송창식의 「왜불러」 「고래사냥」’, 경향신문 1993.4.21- 를 좀 읽어봐.


… 송창식 작사 작곡의 <왜불러>는 본래 입대를 앞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내용이다. “왜불러 왜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 왜불러/돌아설땐 부정하더니 왜왜왜/자꾸자꾸불러 설레게해~” 송창식이 최인호씨의 권유로 10분 만에 작곡한 이 사랑 노래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장발단속경찰에 쫓기는 대학생들의 도주 장면에 삽입되면서 엉뚱하게 퇴폐가요로 낙인찍힌다. 당시 장발을 싫어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TV를 시청하다 머리 긴 가수에 혐오감을 표시한 이후 장발단속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왜불러>는 영화가 개봉되던 해 대통령긴급조치9호에 저촉, 금지됐다. 송창식은 “왜 그 노래가 금지됐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며 자신도 머리를 길게 길렀으나 이발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중략) <고래사냥>도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인호 작사, 송창식 작곡의 이 노래는 젊은이들의 이상을 ‘고래’라는 상징적 언어로 표현한 곡이다.…(중략) 최 씨는 검열당국에 끌려가 ‘고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한 추궁을 받았다. 최 씨는 젊은이들의 꿈을 표현한 건전가요임을 극구 강조하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도록 송창식에게 오히려 외칠 수 있게 작곡을 해달라고 요청까지 했다”고 설명했으나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략)…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 신문광고(사진출처:구글 이미지)




어때? 금지 사유가 참, 거시기 하지? 애매하고. 그만 좀 웃어봐, 얘기 좀 하게. 응? 검열당국이 생각했던 ‘고래’가 뭔지 알겠다고? 또, 뭐? 그 부녀는 TV시청을 참 좋아했던 거 같다고? 응? 아이고. 이제 그만 웃고 얘기 좀 계속 들어봐. 아까 왜 그렇게 검열을 했던 거냐고 물었지? 글쎄,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1975년도 7월 30일 자 경향신문 기사 하나 더 읽어볼래?


<歌謠 퇴패歌謠 무더기 禁止-民謠調 중흥 제창도>

연예계 淨化 바람은 가요계를 강타했다. 그동안 세상을 어지럽게 한 퇴패가요를 무더기로 금지조치 한 것이다. 금지선고를 받은 노래는 방송은 물론 디스크판매도 금하는 것이다. 그동안 젊은 층 깊숙이 파고들었던 거지노래 「美人」을 비롯하여 「그건 너」 「한잔의 추억」이 금지가요 블랙리스트에 들어있어 가요계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마치 진취적인 가요라도 되는 양 美人따위의 노래를 치켜세우던 異常취미의 가요계 일부중진들에게도 커다란 자극과 반성의 기회가 됐다. ▼이러한 「예륜」의 조치에 일부가요계인사들은 심의기준 완화를 건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현실정은 거의 희박하다고 봐야하겠다. ▼가요계지탄의 대상은 통기타로 가요계를 휩쓸어온 장발족이었다. 이들의 태반은 연예협회에도 등록되지 않은 자칭가수들임이 밝혀졌다. ▼한편 타령조 가요인들은 우리고유의 민요調 노래의 중흥을 제창하고 나섰다. 팝송類 의 노래만 너무 치켜세운 여파로 민요풍의 유행가요가 위축되어 온 것은 애석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가 밑줄 그은 부분에 너도 마음이 간다고? 그치?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선수 입장 때 흘러나온 곡 중에 하나였던 ‘미인’이 당시에는 ‘거지노래’였던 것도 재미있다고? 응, 그것도 그러네. 당시 기사 보면서 지식인들 또는 권력자들의 생각이 어떠했을지 대충 짐작되지 않아? 우선, 좀 단순히 보자면 새로운 것에 반감이 컸던 것 같아. 그리고 ‘정화’라는 단어에서도 보이듯이, 대중음악이나 대중예술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데 주효하다고 믿었던 것 같고. 그에 대한 통제나 계도가 당연하거나 또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도 같지? ‘다름’에 대한 차별도 행간에서 느껴지던데, 넌 어때? 그 다름의 잣대로 어떤 것을 쓰느냐에 따라서 시대별로 차이는 있었겠지만, 검열을 하면서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존재들, 또는 위협이 된다고 의심되는 존재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걸 너무도 당연시 했던 거 같아. 한 마디로 인권을 무시한 거지. 응? 결국 검열은 인권 문제랑 맞물린 거라고? 그러네.



그나저나, 블랙리스트가 화이트리스트 되고 돌고 도는 거 아니겠냐고? 아이고, 넌 그런 세상을 그냥 두고 볼 거야? 이제 더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게 개, 돼지가 아닌 이상 우리가 잘 지켜봐야지. 응? 무엇보다도 예술에 국가관을 요구하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내 생각도 그래. 난 예술가한테 검열은 딱 이런 정도만 가능했음 좋겠어, 너도 들어볼래? 아까 처음 얘기 시작할 때 나왔던 그 ‘문제의 작품’ 연출가 얘기야.


“이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울림이 있을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나 스스로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지요. 그 외는 없어요.”


 (2017.5.13. 남산연극센터에서 있었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관객과의 대화 중 ‘검열’ 에 대한 질문에 박근형 연출가가 한 답변이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무대. 2017년 5월13일 남산연극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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