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에 걸린 기억

어느 일요일 아침 풍경을 기억하며......

by 기억의 틈

나는 어떤 기억들은 냄새로 기억한다.


그게 언제의 일인지

몇 살 무렵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특정한 냄새를 맡는 순간

그 시절의 장면이 갑자기 또렷하게 떠오른다.


예를 들어

일요일 아침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그 묘한 냄새가 있다.

햇볕 냄새 같기도 하고

세탁기에서 막 꺼낸 이불 냄새 같기도 하고
어제보다 조용해진 거리의 공기 냄새 같기도 한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어릴 때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 앞에서 장난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침부터 모여

축구공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그중 누구는 무언가에 삐쳐서

벤치에 다리를 툭툭 차면서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땐 그저 그런 주말의 한 장면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냄새를 맡으면
그날의 햇살과 대화와 기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신기한 건

그 냄새가 정확히 같은 건 아닐 거라는 거다.
시간도 계절도 내가 있는 장소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아침 공기’ 같은 아주 모호한 감각이
내 기억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린다.


사진도 없고 기록도 없는데
냄새는 마치 ‘감정의 열쇠’처럼
기억을 조용히 열어젖힌다.


아마도 그 냄새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말

그날의 기분이
코끝을 타고 다시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런 냄새 속에서
그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


아무 걱정 없던 얼굴

크게 웃던 목소리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 나와 함께 있었던 친구들도
나처럼 그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 역시
일요일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다
갑자기 그때 우리의 웃음소리가 떠오르기도 할까?


아니면
그날의 햇살은 내 기억에만 남아 있는 걸까?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아마 그 기억이 ‘나만의 것’이자 ‘우리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일 거다.


어쩌면 언젠가
지금의 이 순간도
어떤 냄새에 실려 불쑥 떠오를지 모른다.


멀지 않은 미래의 내가

어느 일요일 아침 창문을 열다 말고
문득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내 코끝에
이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걸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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