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이 노래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게 가슴이 콕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나를 향해
내 하루를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특별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은 하루지만
그 하루를 나름의 의미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나는 대학교에서 행정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말하자면
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서류를 다루고
학생들을 맞이하고
전화벨에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가는 그런 하루들
누군가에게는 평온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떤 날은 그 평온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잊을 뻔할 때도 있다.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면 캠퍼스는 북적이고
강의실 앞엔 설레는 얼굴들이 가득하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지만
마음 한편엔 묘한 감정이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이 시간이
나에겐 수많은 학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
나는 그 시작을 돕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중적인 감각
그럴 때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조금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날
한 학생이 조심스레 내 자리에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지난번에 도와주신 거 덕분에 마감 전에 겨우 신청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나는 그때 그 학생이 웃는 모습을 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단 몇 분의 도움, 단 한 줄의 메일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하루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 순간 깨달았다.
높은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일상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마음 아닐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온기가 되어주는 것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 속에서도
내 마음만은 높고 따뜻하게 유지하려는 태도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나 ‘위대함’과는 좀 다르지만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살아내는 자세
‘낮은 몸에 갇혀 있대도’라는 말은 곧
물리적 조건이나 역할로는 나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 아닐까?
나는 ‘직원’이지만
누군가의 든든한 안내자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고마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그건 나조차도 미처 모를 때가 많다.
그렇기에 더더욱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름보다
내가 품고 있는 마음이 나를 증명할 수 있도록
가끔은 무기력하고 나의 하루가 너무 작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가사를 떠올린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아무리 평범해도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높은 마음을 품었는지가
결국 나를 결정할 거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같은 자리 같은 책상 앞에 앉으며 다짐한다.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그게 내가 이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