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그냥 울었을 뿐인데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by 기억의 틈

남산을 걷다 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


따뜻한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

나뭇잎 사이로 흘러나오는 새소리.


참새든, 박새든, 무슨 새인지 몰라도

그 소리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아도

그냥 들리는 소리 하나로 하루가 달라진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걷던 중 아내가 불쑥 말했다.

“근데 까마귀 울음소리는 왜 그렇게 무서울까?”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그


그런데 듣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까마귀 소리는 어딘가 으스스하고

멀리서 들리기만 해도 괜히 긴장하게 된다.


‘까악’

photo-1702033006505-8adb936796e1?fm=jpg&q=60&w=3000&ixlib=rb-4.0.3&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

이 한 마디면 배경이 흐려지고

갑자기 분위기가 음산해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일까?

어릴 적 본 이야기 속에서도 까마귀는 늘 무언가를 암시하는 새였다.

불길함, 죽음, 어둠.

그렇게 배운 감정들이 어느새 내 안에 굳어 있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까마귀는 그냥 자기 방식대로 소리를 낼 뿐이다.

그건 그 새의 목소리고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무섭다’고 느끼고 나쁘게 받아들인다.


그 목소리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생김새도 어두워서

목소리도 걸걸해서

그냥 그런 존재로 취급당한다.


어쩌면

까마귀도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나 자신이 생각났다.


나도 덩치가 크고 첫인상이 좀 무뚝뚝한 편이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말이 적은데

그런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종종 무섭다고 한다.


말 걸기 어렵다거나

화난 줄 알았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사실 나는 그냥 조용히 있는 건데

그게 그렇게 보였던 거다.


웃고 있어도 잘 안 웃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엔 이젠 그냥 웃는다.

근데 속으로는 가끔 서운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까마귀랑 좀 닮은 것 같다.


조금 다르게 생기고

조금 다르게 말한다는 이유로

괜히 오해받는 존재.

photo-1710863536530-f3b09a76f1c5?fm=jpg&q=60&w=3000&ixlib=rb-4.0.3&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뭔가 ‘있을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내의 말이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왜 무서울까?’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머릿속엔 ‘까악’ 하고 울음소리가 맴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무섭지 않았다.

무섭다기보다는

‘내 얘기도 좀 들어줘’ 하는 목소리처럼.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오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까마귀도, 나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뭐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