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건 같아도, 비치는 건 다르다
베트남 여행 중, 작은 시장 골목을 걷다가
유난히 번쩍이는 진열장이 눈에 들어왔다.
‘미러급 매장’이라는 큼지막한 간판 아래,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그 앞을 지나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멈춰 서서 구경했고
몇몇은 호기롭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문턱까지만 서 있었다.
가게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 너머로도 충분히 보였다.
비슷한 모양의 가방들, 반짝이는 로고들,
그리고 그걸 집어 드는 손들.
“이거 미러급이에요, 정품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점원이 문 앞까지 나와 말을 건네는 걸 들었다.
미러급, 거울처럼 똑 닮았다는 뜻.
겉모양도, 로고의 위치도, 지퍼 손잡이까지 그럴듯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 물건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웃으며 구매하는 사람들을 보는 내 마음이 그랬다.
물건 하나쯤이야.
싸게 사고 예쁘면 된 거지.
어차피 진짜는 너무 비싸니까.
그런 말들에 일리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유혹 앞에서 망설였고,
한 번쯤은 지갑을 꺼내려다 다시 넣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껄끄러웠다.
이상하리만치 선을 넘고 싶지 않았다.
호텔 방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나서야
왜 그 풍경이 마음에 남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들고 다니는 가방은
어디 브랜드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그냥’ 천 가방이지만,
그 안엔 내 취향이, 손길이, 그리고 시간이 들어 있었다.
인터넷에서 천을 고르고,
여행 며칠 전 밤새며 바느질했던 그 밤의 공기까지.
누가 보면 별 거 아니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가방 하나에 예민하네’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이 가방엔 이름표보다 훨씬 큰 무게가 있었다.
그걸 똑같이 베껴 만든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진짜라는 건 단지 먼저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기획하고, 고르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는
수많은 선택의 흔적이 쌓여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건 디자인일 뿐이지만,
그 뒤엔 시간과 감정이 있고,
그 모든 걸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물론 세상엔 수많은 모방과 재현이 존재한다.
영감을 얻고, 참고하고, 닮아가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리에서 본 그 반짝이는 매장은
누군가의 수고와 마음을 손쉽게 흉내 낸 공간처럼 느껴졌다.
거울처럼 똑같이 생겼지만,
그 안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느낌.
나는 다음 날도 그 골목을 지나갔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가게 앞에서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부터 내 가방을 조금 더 단단히 쥐고 다녔다.
누군가는 이름을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내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요즘 나는 글을 쓴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날은 누가 가져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글을 쓸수록
내가 만든 것에 대해 책임지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내가 만든 문장, 내가 꺼낸 감정,
그 모든 게 가볍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예전엔 저작권이라는 말이 멀게 느껴졌다.
지은이라는 말은 부끄러웠고,
‘그 정도쯤이야’ 하며 넘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처음 만들었다는 건, 그냥 처음 썼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으로 마음을 꺼냈다는 뜻이라는 걸.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고 싶어질 만큼,
내가 애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진짜는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진심으로
내 마음을 꺼내어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