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골고루 먹는 사람의 하루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온 건 커피 향도 아니고 출근체크도 아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어제 저녁에 날아온 ‘그 메일’의 여운이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로 시작하는 메일이 주는 압력은 꽤 묵직하다. 반박도 하고 싶고 해명도 하고 싶지만, 참는 게 이 바닥의 미덕이자 생존법이다.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내 엉덩이는 의자에, 내 커서는 답장 버튼에 닿는다.
업무 특성상 누군가는 화를 낸다. 이건 내가 일을 못 해서가 아니다. 되레 내가 일을 너무 잘 처리했기 때문이다. A팀의 요청을 들어줬더니 B팀이 불쾌해하고, 학생의 입장을 반영했더니 교수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하다 못해 공간 배정 하나 하더라도, 여긴 왜 안 되고 거긴 왜 되냐는 항의가 터져 나온다. 이럴 때면 속으로 이렇게 묻는다. "그럼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거죠?"
가끔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조금씩 불행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어느 날은 팀장님도 날 보고 인상을 쓰고, 다음 날은 학생회장이 날 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나란 사람, 양쪽의 불편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중간자의 기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회의에 들어가면 나는 설명한다.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감정은 최소화하고. “이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공정하려다 보니 이런 선택을 한 겁니다.”라고. 그러면 모두가 고개는 끄덕인다. 회의가 끝나면 나를 따로 부른다. “그래도 왜 우리 쪽은 아니었는지, 조금 아쉽긴 하네요.” 고개를 끄덕인 건 누구고, 아쉬운 건 또 누구지?
어느 날은 이런 농담도 해봤다. “제가 하는 일은요, 욕을 골고루 먹는 일입니다. 편애 없고 공정하죠.” 그러자 옆자리 동료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그게 자랑이에요?”
하지만 속으로는 좀 자랑스러웠다. 모두가 손뼉 치는 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미소 짓고, 누군가는 인상을 찌푸리는 게 당연하다. 다만, 둘 다 동시에 일어날 때, 그 가운데 있는 내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고 싶다. 물론 현실은...... 둘 다 찡그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엔 이런 생각도 했다. 내 역할은 어쩌면 ‘감정의 완충지대’ 같다는 것. 누군가의 날카로운 불만이 나에게 와서 멈춘다. 그리고 나는 그걸 한번 걸러서 좀 더 부드럽게, 또는 조용하게, 다른 쪽에 전달한다. 물론 그 사이에 나는 살짝 까인다. 살짝만 까이면 다행이지, 어떤 날은 껍질이 벗겨진 귤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 채 책상 위에 널브러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 일이 싫지는 않다. 웃는 사람 하나 없는 회의를 끝내고 나면 허탈하면서도 묘한 성취감이 남는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는 건, 모두가 조금씩 손해를 봤다는 뜻이고, 그만큼 모두가 조금씩 양보했다는 뜻이니까. 물론, 그런 상황을 만든 내가 제일 많이 욕먹는다. (그럴 땐 잠깐 자리 비우고 편의점 다녀오자. 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 라떼가 묵묵히 위로해 줄 거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다. 일이 어찌나 몰려드는지 점심시간이 사라지고, 내 자리엔 도시락 대신 연락을 달라는 포스트잇들이 층층이 쌓여간다. 종이는 얇고 말은 짧은데,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대와 압박은 생각보다 묵직하다. 그런 날이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되는 말이 있다. “누구를 위한 일인가.” 물론 그 말 끝엔 항상 이어진다. “...... 모르겠다. 그냥 시킨 거 하자.”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선 또 요청이 오고, 누군가의 문의가 이어지고,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잊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기분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이렇게 해주셔서 진짜 도움 됐어요.”라며 지나가듯 남긴 한마디. 사무실 문 닫으며 살짝 고개 숙이고 나가는 학생의 인사. 오늘도 욕은 먹었지만, 저 한마디 때문에 또 내일 아침엔 일찍 눈이 떠진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건 큰 성과나 완벽한 보고서가 아니다. 오히려 허둥지둥 뛰어다니다가 들은 누군가의 짧은 인사, 말없이 책상 위에 놓인 빵 하나, 복사기 옆에서 나눴던 어이없는 농담한 줄. 그런 자잘한 것들이 쌓여서, 나도 모르게 “이 일 계속해볼까” 싶은 마음이 된다.
물론 내일 또 누군가는 불만을 제기하겠지. 저 사람이 왜 되고, 나는 왜 안 되냐고. 그때도 나는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설명하다 지쳐 내 안의 침팬지가 튀어나오기 직전에야 겨우 진정할 것이다. 그리고 퇴근길에 중얼거릴 거다. “누구 하나 웃지 않았는데, 나만 웃고 있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다. 아마, 괜찮은 거다. 누군가는 기분이 좋아졌을 수도 있다. 다만, 그걸 말 안 했을 뿐. 그걸 보여줄 타이밍이 아직 안 왔을 뿐.
그러니까 오늘도 욕을 먹고 있는 당신. 내가 보기에, 그건 ‘잘하고 있다는 신호’ 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운이 없는 날일 수도 있고. 그래도 내일은 또 새로 시작할 수 있잖아. 모두를 웃게 할 수는 없어도, 너무 많은 사람을 울리지 않는 선에서.
그 정도면 나쁘지 않게 일하고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