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4)
“내 안에 더럽고 추잡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걸 나의 다른 부분들만큼이나 사랑해. 난 그걸 용서한다고. 당신도 그럴 수 있어?”
이 말은 누가 들어도 멋있어 보일 수 있다. 근데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눈 아래 다크서클 그득한 채로 트레이닝복 입고 춤 연습하다가 숨 넘어가듯 토로한다면? 그때 그 장면을 보면서 ‘티파니, 너 진짜… 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쿨한 걸 넘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게 멋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부러웠다. 왜냐고? 나는 그 반대였거든. 나는 내 안에 지저분하고 복잡한 감정을 들키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이렇게 내리쳤다.
“와, 진짜 못 봐주겠다…… 왜 그러는 거야! 대체!”
혼자 방 안에서 벽을 보고 중얼거린 적이 있다. 거울 속 내 표정이 너무 못나 보여서 눈길을 피하고 싶던 날도 있었다. 뭐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독 기분이 안 좋아서 친구에게 퉁명스럽게 말한 게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내가 왜 그렇게 굴었지?” “내가 진짜 못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 혼자 법정 차려놓고 판결 내린다. 유죄. 감정적 폭발로 인한 관계 자해 1건. 자격 박탈. 혼자 있으라.
사실 이게 자존감이 낮아서라기보단 내가 너무 나를 잘 아니까 더 실망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정도는 안 했어야지.” “너답지 않아.” 그런 말로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다 보면 정말이지 ‘못 봐줄 놈’ 하나 완성된다. 근데 그럴수록 이상하게 뭘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자기혐오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한 채찍이 아니라 그냥 자기감정을 더 깊은 구덩이에 빠뜨리는 삽질이다.
그래서 티파니의 대사는 충격이었다. 더럽고 추잡한 부분이 있다고? 나도 있어. 아니, 나는 더 많아. 근데 그걸 사랑한다고? 그걸 용서한다고? 그건 진짜 아무나 못 한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나는 항상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면 나를 좋아하려고 했다. 말 잘하고, 감정 조절 잘하고, 모두에게 친절하고, 생각 깊고, 그런 날만 골라서 나를 사랑하려고 했다. 그 외의 날은? 감점 처리. 감정과다 경보. “넌 진짜 문제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간이 그렇게 매일매일 100점짜리로 살 수 있을까? 우리가 그렇게 완벽했다면 사과도 위로도 다 필요 없었겠지. 실수도 없고, 감정 기복도 없고, 그냥 늘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 너무 지루해서 친구 안 생길 거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옆에 있으면 솔직히 피곤하다. 근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아직도 실수하면 속상하고 괜히 침대에 누워서 이불킥 날릴 때도 있지만 그 순간마다 티파니가 나타난다. 트레이닝복 입고 땀 뻘뻘 흘리면서도 쿨하게 한 마디 한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어때?”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슬며시 웃는다. 진짜 뭐 어때. 욕하고 싶은 나도 나고, 속 좁은 나도 나고, 과하게 들떠서 오버한 나도 나다. 다 합쳐서 내가 되는 거다.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만 없애버릴 수는 없는 구성 요소들.
요즘 나는 내 안의 그 못난 구석들과 대화를 시도 중이다. “야, 넌 왜 자꾸 나타나냐?” 그러면 내 안의 감정들이 말한다. “네가 무시할 때마다 나 커지거든?” 결국 나는 ‘못 봐주겠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쪽을 택했다. 얘는 내가 평생 같이 살아야 할 존재니까. 미워하고 외면한다고 사라지지도 않고 억지로 바꾸려 해 봤자 반발심만 생긴다. 그럴 바엔 같이 살아야지. 좀 못났으면 어때. 그래도 나니까.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누군가 내게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그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