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천천히 몰려올 때
최근 문득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대학 시절, 모든 게 새로웠던 때의 나, 크고 작은 꿈들을 안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나. 그때의 나는 세상이 내 발밑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단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때로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민망하고 쓸쓸하다. 거울 속 나와 현실의 내가 살짝 비껴 서 있는 느낌이다. 몇 달 전 핸드폰 클라우드를 정리하다 대학 시절 적어둔 꿈 목록을 발견했다. “세계일주 하기, 복싱 대회 나가기, 매년 책 한 권 쓰기......” 순수하고 거창했던 계획을 펼쳐 읽는 순간, 웃음과 함께 묘한 부끄러움이 스쳤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았고 실패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는 그 리스트 중 얼마나 이루었을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윤지영의 '부끄럽네'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널 잡지 못했어, 우린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연인을 떠올리는 구절이지만 나는 이렇게 재해석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 과거의 나는 열정적으로 꿈을 내밀었고 지금의 나는 그 손을 잡지 못했다. 그 손짓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켠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반짝이는데 마음속 풍경은 조금 달랐다. 가끔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더 잘했어야 했다”라고 생각했지만 이 노래는 그런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괜찮아, 우린 여기까지니까.” 반복되는 이 한 줄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느끼는 자기 연민과 민망함을 억지로 누르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이 노래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낀 사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조용히 위로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면 마음속 민망한 손짓이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작은 위로가 찾아온다. 부끄러움과 체념 사이, 우리가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 된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의 노트와 마주하며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끄러움 대신 조용한 미소와 함께 말한다. “괜찮아. 여기까지 왔잖아.” 이 노래는 바로 그 마음을 닮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자기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싶을 때, 조용히 귀 기울여 듣기 좋은 노래다.
가끔은 이 노래를 들으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한다. 부끄럽고 민망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놓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그래, 그때의 너도 최선을 다했어”라고 서로를 토닥이며 인정하는 시간. 음악이 끝나고 나면 마음속에 작은 숨결처럼 남는 건 후회나 아쉬움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다. 어쩌면 이 노래가 전하는 진짜 힘은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