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늘 진실을 알려준다
겨울이 오면 늘 찾는 노래가 있다. 어떤 노래는 계절을 품고 있고, 어떤 계절은 오래 잊고 지냈던 기억을 데려온다. 그래서인지 나는 겨울만 되면 유난히 마음 한편이 조용해지고 오래전 사람들의 얼굴이 서서히 떠오른다. 그 사이에는 늘 착각과 진실의 경계가 있다. 눈이 모든 풍경을 덮으면 무엇이 진짜였는지 잠시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 특별한 계기도 없는데 이상하게 학창 시절 친구 하나가 자꾸 생각났다. 오래 가까웠던 친구도 아니고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관계도 아니었지만, 잠깐이었음에도 내 기억 속에서 은근히 따뜻하게 남아 있던 사람. 나는 그 우정을 늘 숲처럼 기억했다. 교실 뒤 창가에서 떠들던 오후, 함께 걸어가던 하굣길, 나름대로 서로에게 편안하다고 느꼈던 순간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꽤 깊은 관계였다고 믿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건 숲이 아니라 바다에 가까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함께 있을 때는 편했지만 멀어지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웠던 사람. 나는 숲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꼈지만 사실은 서로의 삶이 처음부터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던 관계. 학창 시절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는 숲속의 나무들처럼 가까워 보였지만 그 시절이 끝나자마자 물결처럼 멀어져 버린 모습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는 사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서야 인정했다.
겨울은 이렇게 우리 마음의 착각을 조용히 드러내는 계절이다. 눈은 풍경을 부드럽게 덮지만 그 아래에 있던 진실까지 지우지는 않는다. 우리가 숲이라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바다였다는 걸 보여주듯이. 어떤 관계는 따뜻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 오래 남아 있을 뿐, 실제로는 처음부터 다른 결을 가진 파도였음을 겨울의 공기가 천천히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나는 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최유리의 <숲>을 듣는다. 이 노래에는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들을 때마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있던 장면들이 다시 선명해진다. 내가 숲이라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바다였음을 그리고 그걸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음을 조용히 알려주는 노래다. 기타 소리 사이에 스며 있는 겨울의 공기, 목소리의 여백, 차가운 듯 후련한 감정선이 이 노래를 더욱 깊게 만든다.
이번 겨울에도 나는 이 노래를 다시 듣고 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지나온 관계의 진짜 모습을 떠올리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 조용히 이 노래를 틀어보면 좋겠다. 겨울 풍경 속에서 착각과 진실이 어떻게 다른 색으로 빛나는지 최유리의 <숲>이 아주 조용하게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