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빈자리, 좋아해서 미안해

울보공주 페라가 잠시 떠난 3번 방에서

by 날마다 소풍

혼자서 서너 명의 아이의 몫을 하는 3번 방의 평강공주 울보 페라가 잠시 3번 방을 떠났다.

울음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고 늘 긴장되던 발걸음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하지만 페라의 빈자리를 볼 때면 3번 방의 평화와 안도에 미안함을 느낀다.








온달이 있다면 국제결혼이라도 시키겠다고 겁을 주고 싶은 3번 방의 평강공주 울보 페라. 페라의 갑작스러운 울음과 발버둥의 횟수와 강도는 겨울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온 뒤 점점 더 심해졌다. 게다가 그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동원되던 사탕이나 과자, 노래와 꼬시는 말들의 효과는 점점 약해졌다. 그러다 보니 페라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3번 방 교사들의 의지도 조금씩 시들어졌고 가끔은 그냥 실컷 울게 놓아두기도 했다. 진이 빠질 정도로 실컷 울고 나면 그 이후에는 집에 갈 때까지 울지 않는 페라를 보며 어쩌면 어쩔 수 없이 북받치는 감정을 해소시키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다치지 않도록만 지켜보면서 울도록 내버려두는 날이 늘어났다.


원인을 알 수 없이 페라는 종종 자다가도 새벽에 일어나 울거나 징징 대면서 다시 잠을 자지 않아서 페라의 부모들은 늘 피곤에 지쳐있었다. 거의 매일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밤이 지속되는 모양이었다. 밤잠이 충분하지 않으니 학교에서도 더 예민해져서 울음의 횟수와 강도가 느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 페라의 머릿속을 떠돌고 어떤 감정들이 페라의 마음을 흔들어서 잠도 못 자고 울고만 싶어 지는 건지 궁금했다.


나아질 기미가 없는 페라의 상태를 부모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우리 동네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대학의 자폐아를 위한 6주짜리 프로그램에 등록을 했다. 그래서 페라는 6주 후를 기약하며 잠시 3번 방을 떠났다. 3번 방 교사 모두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페라가 치유되고 원인의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지난 금요일 짧은 이별의 인사를 나눈 후 아빠에게 안겨 멀어지는 페라를 보며 우리는 마음을 울음이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페라로 돌아오길 기원했다.


페라가 없는 3번 방은 더 이상 페라의 울음소리 때문에 다른 꼬마들이 귀를 막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고 페라를 달래거나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페라가 울면 불안해하던 꼬마들이 매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비슷한 상황을 겪다 보니 이제는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생각하며 크게 반응을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페라의 울음소리가 커지거나 저항하듯이 교실 바닥을 뒹굴며 발버둥을 치면 어쩔 줄 몰라서 귀를 막고 선생님들 뒤에 숨는 꼬마들이 있다. 그럴 때면 교사들은 페라도 달래고 불안해하는 그 꼬마들도 달래느라 애를 썼다.


한참 울고 난 페라가 놀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본다

사실 페라의 부재로 제일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다. 하루에 세 번 잼스와 마꼴 그리고 페라를 보건실에 있는 화장실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내가 맡은 일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매일 꼬마 셋을 데리고 화장실 갈 때면 언제 어디서 페라가 울면서 뒹굴지 몰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페라는 손을 씻다 말고 울면서 화장실 바닥을 뒹굴기도 했고 복도 걷다가 갑자기 울면서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은 강당을 지나다가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어서 그런 페라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게다가 그런 페라의 모습이 일상이 되어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6살밖에 안 된 꼬마 마꼴과 잼스 둘이서 울고 있는 페라와 페라를 달래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상황에서 페라의 울음과 발버둥이 길어지면 대략 난감해지곤 했다.


페라가 자폐아 치유 프로그램을 위해 잠시 3번 방을 떠나서 요즘은 잼스와 마꼴을 화장실 데리고 다니는 것이 산책을 다니는 양 마음이 가볍다. 예고도 없이 뻣댕기며 우는 페라를 달래기 위해 애쓰다가 녹초 될 일이 없으니 몸도 편하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신나게 노는 남다른 꼬마들을 지켜보다가 페라가 뒹굴던 잔디밭이나 누워서 햇빛을 쬐던 모래 놀이터를 습관처럼 문득문득 바라보는 나를 발견했다. 페라가 잠시 없으니 너무 홀가분하고 좋다며 3번 방 보조교사들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뜨끔했다. 페라가 없는 3번 방에 찾아온 잠깐의 평화와 고요한 안도감을 누리고 있는 나의 모습에 마음이 몹시 불편하기도 했다. 그 또한 나의 존재의 이유인데 페라의 빈자리를 좋아라 하고 있다니...... 페라에게 미안하다.




이 잠시의 이별이 3번 방 다른 꼬마들이나 교사들 뿐만 아니라 페라 부모에게도 늘 마음 졸였던 삶에 치유가 있고 편안한 마음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무엇보다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한 울음 터지는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치유되어 밝고 환한 웃음으로 페라가 돌아오기를 페라의 이름이 붙은 빈 책상을 보며 소망한다.


20190123_132825.jpg 자극적인 감촉에 반응하는 페라를 위해 사용하던 쿠션. 페라가 이렇게 웃으며 3번 방으로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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