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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02. 2019

미국에서 만난 어떤 한국 새댁의 이민 시집살이

세상 제일 불쌍하다는 어느 한국 며느리들 이야기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일이 없는 것을 태평양을 건너와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을 통해 보거나 듣고, 경험하는 뜻밖의 것들이 있다.

미국에 있는 시댁으로 시집온 한국 며느리의 서글픈 처지가 그중 한 가지이다. 






요즘 젊은 며느리, 나보다 스무 살쯤 어린, 기혼 여성들의 결혼생활은 내가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하던 때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시집 식구나 친척들에 대한 불편함, 시부모에 대한 묘한 부담감 그리고 시집과 친정 사이에서의 위화감 같은 것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에 있을 때, 며느리로 살고 있는 지인들과 모이면 늘 등장하는 화제 중 하나가 독특한 시부모나 시집식구들로 인해 경험하는 갖가지 시집살이였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며느리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정은 가까이 시집은 멀리’가 좋다는 데 동의하곤 했다. 

특별히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부모를 모시는 것도 아니면서 나 또는 그런 대다수의 며느리의 의견에 공감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에서 살 때는 생각지 못했던 다른 모습으로 사는 며느리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을 떠나 홀로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모두 미국에 사는 한국 남자에게 시집 온, 자신의 친정 식구는 미국 땅에 하나 없이 시집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사는 며느리들이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 아줌마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말하는 며느리가 바로 홀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시집온 이 여성들이다.

친정은 태평양 너머 저 멀리, 층층 시야 시집 식구들은 바로 코앞에 두고 사는, 대부분의 한국 며느리들이 바라는 것과 반대의 경우를 살고 있는 며느리들이다.

특히 시집 식구들이 한국이 어렵던 시절 도미하여 미국에서 제법 자리를 잡고 번듯한 가계를 이루었다면 더 힘든 시집살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아는 지인 중에 한국에 있을 때 잠시 한국에 머물던 남편을 만난 후 용감하게 자신의 가족을 떠나 남편을 따라 혼자 미국에 온 사람이 있다.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처음 미국에 오자 시부모를 비롯하여 남편의 친가와 외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집안 어른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너는 개발 도상국인 한국에서 살다가 남자를 잘 만나서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으니 출세를 한 것이다. 
네 남편 덕에 호강할 것이다.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시부모와 친척들에게 잘해야 한다.


게다가 대접받고 싶을 때는 한국의 관습을 따라, 자신들의 필요가 있을 때는 미국의 문화를 따라 남편 하나 믿고 홀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 온 이 젊은 며느리를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기 힘들던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 어르신들은 TV를 통해서나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의 변화와 발전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당신들이 미국으로 이민 오던 시절의 생각과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찌감치 한국보다 개방된 문화와 관습을 가진 미국에 살면서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 있는 동년의 어르신들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고수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어르신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스스로의 틀을 깬, 시대의 변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 삶을 사는 어르신들이 있는 것처럼 미국 땅에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시대를 앞서가는 이해심, 젊은이들보다 더 젊은 생각으로 사는 분들도 계시다.

또한 이곳에도 어디에나 있는, 자신의 며느리를 자신의 친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시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가끔 듣는 미국 시민권자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시집온 며느리들의 이야기는 같은 며느리로 살고 있는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홀로 이민 시집살이를 겪는 며느리들의 고충 중 하나가 바로 내 지인이 겪고 있는 이럴 때는 한국 법, 저럴 때는 미국 법을 운운하며 미국에서 번듯하게 사는 자신들을 특별하게 여기는 시집 식구들과의 갈등이다.

그런 경우에는 당신들도 하지 않는, 한국에서도 사라져 가는 관습을 태평양 건너온 새 며느리가 따를 것을 종용하면서 당신들은 미국 문화를 따라 편한 대로 행동하는 시집식구들 때문에 새 며느리는 심히 마음고생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같은 며느리로서,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착잡하다.




마음 답답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한 그분들의 인생이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특권이 되어 허세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난생처음 보는 층층 시야 시집 식구들을 모두 보듬기에는 자신의 가족과 터전을 떠나온 새 며느리가 너무 힘겨울 것이라는 것을 가늠하는 어른들이 되어주는 것을 그 어르신들에게 기대하는 일은 어려운 것일까? 




어디에 살든 우리는 누구나 며느리이거나 며느리의 남편일 수 있다.

자녀가 있는 이라면 언젠가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가 되거나 내 딸이 남의 며느리가 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될 즈음에는 어느 곳에 살든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처럼 한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독립적이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내 딸이 며느리여서 더 희생을 강요받지 않기를, 우리 가족이 된 며느리에게 양보와 이해를 강요하는 내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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