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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02. 2019

엄마가 벌레가 되는 순간, 우리도 벌레가 된다

인터넷에서 맘충들에 대한 댓글을 읽은 어느 날

기호에 따라 벌레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레를 싫어한다. 심지어 혐오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못마땅한 사람들을 벌레로 치부하기 시작했고, 그 행태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가능하면 인터넷 기사나 화젯거리에 달린 댓글을 자세히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기사에 달린 어느 댓글이 우연히 눈에 뜨였고, 이어진 댓글들에서 "맘충"이라는, 언젠가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서 낯설지 않은 낱말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무심코 사용하는 "맘충"이라는 글자를 볼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타인에 대한 혐오가 너무 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된장녀, 김치녀라는 여성 혐오 용어로 시작된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표현이 점점 도를 넘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거슬리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벌레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시작된 한남충, 급식충, 틀딱충 그리고 맘충이라는 표현들이 인터넷 상에서와 사람들의 대화 속에 대수롭지 않게 오르내리게 되었다.

심지어 얼마 전 한국 최초로 장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제목도 "기생충"이었다. 


여러 가지 혐오 표현 중에 내게 제일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말은 "맘충"이다.

아마도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나를 낳고 기른 분이 엄마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엄마라는 존재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과, 자신들도 엄마라는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맘충"이란 말로 "엄마"라는 귀한 이름을 쉽게 비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표현의 시작은 과도한 자식 사랑과 도를 넘는 자기 자녀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타인과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어떤 엄마들 때문이었고, 그 엄마들의 태도나 자세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수 엄마들에 대한 회의감에서 시작된 "맘충"이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도 쉽고 함부로 사용되며 그것이 아이가 있는 엄마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이기 때문에 도를 넘어서는 엄마들마저 옹호한다고 지적을 받을지라도 "맘충"이라는 말에 대해 마음이 불편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벌레는 벌레를 낳고 벌레에게서 태어난 것 역시 벌레이다.

엄마 벌레에게서 태어난 것은 새끼벌레이다. 그리고 새끼벌레는 자라서 벌레가 될 수밖에 없다.

엄마를 벌레 취급하면 엄마가 낳은 것은 새끼벌레이며 벌레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나 스스로가 벌레에게서 태어났으므로, 자신도 벌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다소 과장스럽기는 하지만 엄마들이 "맘충"이라는 벌레가 되는 순간, 전인류가 벌레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들이 더 이상 벌레가 아닌 그냥 '엄마'가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육아에 몸과 마음이 지쳐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교양과 상식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이더라도, 간혹 과한 자식 사랑에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들도 다른 누구만큼 교양과 상식과 능력 있는 보통 여성이었을 것임을 기억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그리고 엄마가 될 수 있을 딸을 가진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

엄마인 이들이 또는 엄마가 될 수 있는 이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것을 행복해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그와 더불어 사람이 더 이상 벌레로 불려지지 않는, 그들의 행동이나 태도의 문제는 지적하되, 사람이 사람이라 불리고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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