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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Nov 14. 2019

미국에서 한쿡 아이가 아닌 한국 아이로 기르기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은 한국어를 배우면 좋겠어요 1 

나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한국사람들이 유창한 영어에 대한 동경과 함께 영어가 욕심만큼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런 영어에 대한 위화감과 자괴감에 대다수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은 그 열등감을 넘어서 영어권에 사는 사람들처럼 원어민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영어를 위해 한국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와 필리핀으로 먼길을 떠난다.

큰 맘먹고 다른 나라를 향해 떠난 부모들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자녀들이 옆집에 사는 원어민 아이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의 열심과 열정 덕분에 조만간 아이들은 한국어 억양이 전혀 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떠나온 한국이란 나라의 말을 점차 잃어가게 된다.




미국에 살면서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국인들 중에 한국어가 서툰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미국에 이민을 온 후 부모들이 집에서 한국말을 쓰면 꾸중을 하며 영어만 쓰게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어를 못하는 성인 자녀를 둔 한국인의 부모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당시에 자녀들 영어 빨리 늘라고 한국어를 쓰면 혼냈더니 아이가 언제부터인지 한국말을 못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여전히 영어를 잘못하고, 성인이 된 자녀는 한국어를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는 한국어로 말하고 자녀는 영어로 대답하면서 어렵게 의사소통은 하지만 속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는 껍데기 같은 대화만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성인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하고 있다.

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매우 다양한데, 한국 고객들이나 한국 직장동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인들, 한류에 매료되어 한국어를 배우는 아시안계 미국인들, 한국인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인들 그리고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 2세 또는 3세들이 우리 반 학생들이다.


그중에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 아가씨 학생이 있었다.

어렸을 때 부모가 한글학교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부모도 공부를 잘하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며 한국어 배우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보니, 미국에서 살지만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피할 수 없는데 한국어를 제대로 못하니까 그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심히 하지만 한국어가 외국어처럼 느껴지니 기대만큼 한국어가 늘지 않아 답답해했다.

언젠가 개인적으로 부모님과 어떻게 대화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비슷한 상황의 많은 한국 가정이 그러하듯 부모는 한국어로, 본인은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했다.

서로 오랜 시간의 경험과 이해로 대강의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완벽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고 전화도 잘 안 하게 된다는 그 학생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온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미국인처럼 영어를 하게 되면 그 아이가 완전한 미국 사람이 될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한국인의 모습은 바꿀 수 없고, 그 뿌리는 여전히 남아서 결코 한국이라는 끈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미국인 친구들 속에서 성장하고 나서도 '피가 끌린다는 표현'처럼 이상하게도 한국 사람들과 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지만, 간혹 그런 관계에서 영어만 할 줄 아는 한국인은 외모만 한국인 같을 뿐 보통 미국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가 완벽한 한국사람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하는 가슴 아픈 사례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에 와서 만난 요즘 한국 부모들은 과거의 부모들과 달리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에도 열심이다.

개인적으로 한국 부모들이 과거에 비해 현명하고 지혜로와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한글학교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도 일하고 있다.

한글학교니까 당연히 수업 내용은 한글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자기들끼리 영어를 사용한다.

혹 한국어를 하더라도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한다.


"선생님, 나 Homework 못했다요."

"피터가 내 Snack 먹어서 feel bad."

지나다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린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한국어 실력이 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 같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꾸준히 한글학교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부모들이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아이들이 계속 한국어에 노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한국에서 사는 아이들처럼 한국어를 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언어와 뿌리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토대를 세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인의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계 미국인은 될 수 있어도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어떤 힘에 의해 형성된 인간관계나 일을 하면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벗어나 완전한 미국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하다.

벗어날 수 없는 뿌리라면 당당히 한국 사람스러움을 드러내며 미국인들과 별다른 게 없는 수준의 영어도 갖추어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완벽한 미국인이 될 수 없다면 한국어도 잘하면서 영어도 완벽한 한국인이 되어야 그런 강점을 이용하여 한국을 위해서, 동시에 미국을 위해서도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한국을 떠나 살지만 계속 한국어를 듣고 말하도록 교육하고 한국인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게 자녀를 키우는 한국 부모들의 현명함과 지혜로움에 뜨거운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이 한쿡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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