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명절, 추수감사절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날
내일이 온 동네가 터키를 굽는, Thanksgivoing 즉 추수 감사절이다.
올해는 가족이 더 그리운지, 추수 감사절이 유난히 더 차갑게 느껴진다.
Thanksgiving은 Christmas와 함께 미국인들에게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함께 모여 커다란 터키를 비롯한 thanksgiving 음식들로 차린 만찬을 함께 하며 특별한 시간을 갖는 큰 명절이다.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가 꽉 막히고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대단한 번접함까지는 아니지만 그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가족을 찾아 떠나느라 공항이 북적인다.
그리고 마켓마다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카트에 필요한 것들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계산대 앞에 줄은 서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을 떠나고 처음 맞는 한국의 명절이 다가왔을 때, 분주하게 명절을 지내는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들었지만 그 북적거림과 거리가 있는 것이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미국과는 상관없는 설이나 추석에는 별다른 감흥 없이, 간혹은 설날이나 추석 날인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지나곤 한다.
반면에 이제는 미국의 절기에 적응이 된 모양인지 미국의 명절이면 오히려 가족들이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추수 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여 집 밖으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새어 나오거나 다른 친척네 집으로 가서 불이 꺼진 동네 이웃집들 사이에 오도카니 혼자 조용한 우리 집이 적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과장된 듯한 표현으로,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창 밖에서 서서 집 안의 따스한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을 보며 더 춥고 쓸쓸했을 그 차가운 밤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물론 미국에 다른 가족들이 없는 지인 가족들과 일부러 모임을 만들어 저녁을 먹거나 작은 파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또한 품앗이처럼 서로 합의 하에 의도적으로 계획해야만 가능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아도,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명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온 가족이 모이고 친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당연한 명절의 분주하고 피곤한 과정이 가끔은 싫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한국 명절의 북적임과 극성스러움이 그립다.
남의 나라 명절을 맞아 내 나라의 명절에 대한 그리움이 조용하게 스며들 때면, 내가 태평양 건너 먼 남의 땅에 있음을 깊이 실감하게 된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맞이하는 남의 나라 명절이면 유난히 마음이 헛헛하다.
일부러 만든 모임과 품앗이 저녁도 채우지 못하는 구멍 틈으로 그리움이라는 찬 바람이 들어오는 탓에 괜스레 울적해진다.
사람은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과 멀어지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그리워하게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