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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24. 2019

얼굴의 주름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던 어느 날

날마다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어느 순간 이야기 3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먹는 것은 바로 '나이'입니다.

성장을 의미하던 나이 드는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는 늙어가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장이 멈춘 어른들은 바로 그 늙어가는 나이를 먹게 됩니다.

날마다, 매시각 늙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평소에는 잊은 듯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또는 사소한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내가 늙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늙었나 보다'라는 생각에 화다닥 놀라는 순간들.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주름아, 너 왜 안 없어지니?




어린 시절, 나는 매우 소심하고 약간 우울한 아이였다.


나는 발표하고 싶어도 백만 번을 망설이느라 손 한번 들지 못하고 막상 발표할 차례가 되면 긴장과 두려움에 입술만 달짝 거리는 나의 그 극한 소심함이 너무너무 싫었다.


반면에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먼저 보고,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사로잡히는 나의 우울함은 이상스레 맘에 들었다.

우울해지고 싶거나 우울한 생각이 나를 찾아올 때면, 나는 우울한 중이며 그늘에 숨은 나를 건들지 말라는 뜻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럴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짓 화난 듯한 나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나를 내버려 두어 주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그 관계의 여백이 소심한 나에게는 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성향으로 인해 화가 날 때나 기분이 나쁠 때뿐만 아니라 어떤 생각에 집중할 때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들을 때,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과 인생의 연륜으로 인해 약간 소심하고 이따금 우울한 어른으로 훌륭하게 발전했지만 어려서부터 가진 습관은 여전히 나와 함께 했다.

그로 인해 내 의도와는 다르게 가끔은 화가 났거나 기분이 나쁜 것으로 오해를 받는 일들로 인해 나는 애착을 가졌던 내 습관에 회의감을 품게 되었다. 

내 마음과 다른 그런 오해에서 벗어나고 좀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노력을 통해 빈도를 줄였지만, 가끔 무언가에 골몰할 때나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십 년 동안 함께한 그 습관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싶은 순간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로션을 바르는데 거울에 비친 내 미간에 주름이 선명한 것을 발견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는데 두 눈썹 사이에 초등학교 때 배운 내 천자(川) 모양의 주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맙소사!

두 손으로 열심히 미간을 펴보아도 손을 떼면 내 천자는 그대로였다.



이제는 자고 일어나면 미간의 주름이 사라졌던 피부가 그 탄력을 잃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심술궂은 할머니 같은 얼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얼굴의 잔주름이나 늘어나는 흰머리, 잦아지는 깜빡증의 횟수를 자각할 때와는 다르게 내가 심히 늙어가고 있다는, 아니 이미 늙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내 얼굴에, 아니 탄력을 잃은 미간의 피부를 통해 내가 늙어간다는 것을 선명하게 깨닫게 된 아침이었다.

점차 할머니에 가까워지겠지만 심술궂은 할머니의 얼굴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로 거울을 보다가 미간의 주름이 보이면 나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양쪽 눈썹을 잡아당기곤 하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미간의 주름이 느껴지면 미간에 힘을 주며 주름을 펴려고 노력하였다.

그 노력 덕분인지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흔적이 더 깊어지지는 않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세상을 살지만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나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여러 다른 모양으로, 그러나 대부분 긍정적인 변화를 선택한다.


주변에 술을 몹시도 사랑했으나 몸이 나이를 먹는 것을 깨닫고 술과 거리를 두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운동을 끔찍하게 싫어했으나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자신의 몸이 늙어감을 받아들인 뒤, 동네를 열심히 걷고 있는 지인도 있다.

채소는 토끼나 먹는 거라던 친구는 의사를 통해 자신의 신체 나이를 알게 된 후,  좋아하던 고기를 반쯤 포기하고 고기 반 채소 반으로 식단을 바꿨다. 



나이를 먹는 것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건강만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든까지 간다는 세 살 버릇을 여든이 되기 전에 고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이제 약간 소심하고 이따금 우울한, 그리고 반듯한 미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발견한 어느 아침, 나는 약간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졌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나는 내가 먹고 있는 나이가 만드는 내 삶의 긍정적인 변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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