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Oct 07. 2019

화분에 물을 줄 때면 내가 좋은 사람같이 느껴진다

문득 나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순간 이야기  1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밀려드는 삶의 크고 작은 도전에 휘둘리면서 점점 작아져가는 나를 봅니다.

당당하게 업적을 성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아주 사소한 일로 내가 그리 한심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치이며 살다가 만나는, 내가 생각보다 더 나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퇴근하고 빈집에 들어서는데 현관 옆에 있는 화분에 심긴 스킨답서스(scindapsus)가 시들시들해 보였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마시던 컵에 물을 담아 화분에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집안의 화분에 물을 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마음을 먹고 물뿌리개를 꺼내 물을 가득 담아 집안 곳곳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마른 흙에 물이 순식간에 스며들면서 시들 거리던 초록잎들이 기운차게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가느다란 물뿌리개 입구에서 나온 물이 화분의 흙을 촉촉하게 만들고 초록잎이 생생 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참 친절하고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화분에 물을 주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물뿌리개를 자리에 갖다 두고 물을 실컷 빨아들여 생생하게 살아난 화분들을 가뿐한 걸음걸이로 돌아보았다.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기분에, 식물에게까지 내 시간과 노력을 베푸는 나의 너그러움과 식물과도 교감하며 사는 나의 여유로움에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영어에는 식물재배나 원예에 대한 재능을 일컫는 “Green Thumb”이라는 표현이 있다.

내 주변에는  “Green Thumb”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들의 집에 방문할 때면 갖가지 식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 그 생명력이 집 안팎에 생기를 불어넣는 모습이 늘 부러웠다.


한참 공기정화식물이며 전자파 차단에 좋다는 식물이 유행일 때, 초록빛 가득한 집안을 꿈꾸며 화분을 사다가 집에 들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초록빛에 뿌듯한 기분도 잠시, 기르기 쉽다는 식물들도 얼마쯤 지나면 갈색으로  말라버리거나 누렇게 퇴색되곤 했다.

그래서 자칭 Brown Thumb을 가진 나는, Green Thumb을 가진 이들에게는 나에게 없는 특별한 식물과의 교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어느 날, 나의 마음을 들은 지인이 누구라도 가꿀 수 있는 쉬운 식물들을 소개하면서 다육식물 몇 개를 나누어주었다.

지인에게 얻는 다육식물들을 정원에 꽂아놓아 햇빛을 잘 받게 해 주니 스프링클러(sprinkler)가 물만 주면 잘 자랐다.


정원에 자리를 잡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육이들이 번식하는 모습에 의욕이 솟은 나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스킨답서스(scindapsus) 화분을 두 개를 샀다.

지인의 말대로 스킨답서스는 아주 쉬운 아이였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듯할 때 한 번씩 물을 주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조그맣게 뿌리가 붙은 줄기를 쭉쭉 뻗어가며 자랐다.

가끔 뿌리가 뾰족하게 붙은 부분의 줄기를 잘라서 다른 화분에 옮겨 심으면 금방 자리를 잡고 줄기를 뻗었다.

심지어 물만 담긴 화병에 꽂아 두어도 물속에 뿌리를 뻗으며 잘 자랐다.


덕분에 지금 우리 집에는 화분 두 개에서 새끼 친 스킨답서스가 심긴 화분이 곳곳에 놓여있다.


스킨답서스 덕분에  나는 아주 미미하지만 식물과 교감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어쩌면 내 갈색 손가락 끄트머리가 조금쯤 초록색이 되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지인이 놀러 왔다가 집안 여기저기 초록빛을 뽐내며 자라는 스킨답서스를 보고 부러워하기에 나눠주며 스킨답서스를 전도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스킨답서스(scindapsus),  출처 : 네이버




나는 사람을 살리거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거나 또는 경제를 움직이는 위대한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은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있는 아주 쉬운 아이, 우리 집의 초록이 스킨답서스가 기운이 없는 것을 볼 때면 긍휼 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물을 뿌려주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내가 뿌려준 물을 빨아들여 싱싱하게 되살아나 초록빛 생명력을 뿜어내는 초록이들을 볼 때면,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것을 돌보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마른 화분에 물을 뿌려줄 수 있는, 그런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스스로가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의기소침해진 누군가가 있다면 기르기 쉬운 작은 초록이를 하나 사서 키워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가끔 바라봐주고 물을 주는 것만으로 쑥쑥 자라는 것을 볼 때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하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에서 한 번쯤 스쳐 지나는 마흔두 살을 돌아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