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Nov 17. 2019

주차자리를 뺏은 운전자, 얌체 같은 네가 미웠다

별것 아닌 일로 짜증과 분노가 솟구치는 어느 순간 이야기  1

약간 불편하고 조금 언짢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작은 일들에 공연히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하는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짜증과 분노를 일으킨 사람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면 그런 감정이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 사소한 것에 짜증과 분노가 솟구치는 순간.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인근에는 중국 마켓이나 일본마켓을 비롯해 한국 마켓이 여러 개나 있을 만큼 한국인과 아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가 있다.

많은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우리 가족도 여전히 한식을 즐겨먹는다.

때문에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날을 정해 장을 보러 간다.

한국사람을 비롯한 다른 아시안들 뿐 아니라 종종 하얀 얼굴에 금발머리의 사람들도 한국 마켓을 즐겨 찾기 때문에 한국 마켓이 있는 주차장은 늘 붐빈다.

게다가 다들 비슷한 마음이어서 마켓 근처에 주차하고 싶어 한다.


오늘도 역시나 마켓이 있는 몰에 들어서니 차들이 줄을 지어 주차되어 있고, 주차할 자리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차들이 보였다.

나 역시 장 보러 마켓에 들어가기 편한 자리를 찾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마침 어떤 고마운 차가 떠나려는 것이 보이기에  얼른 다가가서 차를 뺄 공간을 남겨두고 깜빡이를 넣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주차된 차가 빠지자마자 그 자리에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후딱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저녁 할 생각에 마음은 분주하고 금방 좋은 자리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얌체 같은 운전자에게 화가 났다.

그렇다고 차에서 내려 그 운전자에게 따질 배포도 안 되는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달래며 다시 주차장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마켓 출입구와 먼 빈자리에 겨우 차를 대고 장을 보러 들어가면서 아까 얌체 주차를 한 차를 향해 눈을 흘겼다.

마치 내 눈 빛이 그 차의 타이어라도 터뜨릴 것처럼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장보기를 마치고 물건을 가득 실은 쇼핑 카트를 밀며 저 멀찌감치 내 차가 주차된 곳을 향해 걸으면서 아까 놓친 자리를 지나다 보니 다시 화가 슬며시 올라왔다. 




사실 몇 걸음 더 걷는 것은 시간상으로나 노력상으로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 운전자가 나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용무가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깜빡이를 넣고 기다리는 것을 상대방은 못 봤을 수도 있다.

게다가 걷기가 부족한 요즘, 멀리 주차된 차 덕분에 몇 걸음 더 걷게 되었으니 건강에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운전자가 얌체같이 내가 주차하려는 자리에 차를 넣는 순간에는 그런 마음 넓은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불끈 화가 먼저 난다.

내 것이 아님에도 내가 잡은 것 같은 사소하고 작은 것, 차 한 대 잠깐 주차할 수 있는 공간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뺏겼다는 생각에도 나는 공연히 짜증이 나는 것이다.


집을 향해 운전을 하면서 좀 전에 불끈 솟았던 화가 섞인 짜증에 사로잡혔던 나 자신이 조금 한심스럽기도 했다.




아직도 사소한 일에 분노를 먼저 보이는 나란 사람은, 논어에 나오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이라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진작에 먹었음에도 숨겨진 혈기는 여전히 참 쉽게 끓는,  양은냄비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부르르 끓고 홀랑 식어버리는 양은냄비가 아닌 달구어지는데 오래 걸리고 천천히 식는 돌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굴의 주름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던 어느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