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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an 09. 2020

길에서 만난 쓰레기가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는 날

문득 나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순간 이야기  2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밀려드는 삶의 크고 작은 도전에 휘둘리면서 점점 작아져가는 나를 봅니다.

당당하게 업적을 성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아주 사소한 일로 내가 그리 한심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치이며 살다가 만나는, 내가 생각보다 더 나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우러 가는데 학교 점심을 사 먹은 아이들이 버린 종이 접시가 내 앞에 떨어져 있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허리를 구부려 종이 접시를 접어 옆에 있는 쓰레기통애 넣었다.

흐음~ 뭔가 착한 일을 한 기분에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때 나는 선생님의 말은 꼭 들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도덕 시간에 배운 대로 쓰레기가 보이면 쓰레기를 줍기에 힘썼다.

그리고 내가 만든 쓰레기는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려고 노력했다.

운동장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지나가는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키가 크는 만큼 머리도 자란 어느 날 사람들은 쓰레기를 줍지 않으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도 자기는 안 주면서 줍는 학생을 칭찬하며 선생님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뿐이라는 것도 눈치채게 되었다.

도덕 시간에 배운 것을 지키는 사람보다 지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상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것보다  쓰레기는 줍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쓰레기를 휙휙 버리는 이들이 쿨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 후에도 여전히 나는 가능하면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레기를 줍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다.




걷다 보면 가끔 눈에 거슬리는 쓰레기를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저 멀리 있는 것을 일부러 찾아가 버리는 선한 양심은 아니지만 하필 내가 걸어가는 길에 떨어진 쓰레기가 몹시 신경 쓰일 때가 있다.

누구도 봐주지 않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운 뒤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이제는 지나가는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수거하거나 쓰레기 산의 문제를 파헤치며 앞장서서 지구를 지키는 대단한 환경 운동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저 수없이 많은 쓰레기 중 하나를 주웠을 뿐이면서 지구의 쓰레기 한 개는 치웠다는 작은 뿌듯함으로 발걸음은 가볍다.





쓰레기를 만나도 못 본 척 지나치다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가 자기를 쓰레기통에 버려달라며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길 가다 만나는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쓰레기를 줍는 날, 어쩌다 한 그 작은 일을 한 나 자신이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를 주운 날,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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