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생존기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학교에는 다양한 보조교사들이 일하고 있다.
일반 학급의 학습 부진아들이나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돕는 보조교사도 있고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의 장애 학생들을 돕는 보조교사들도 있다.
나는 우리 동네의 미국 초등학교 내에 있는 특수학급 중 유치반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산지 팔 년이 되었지만 누가 물으면 팔 개월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한 지 이년 반이 되어간다.
내가 학교의 제도 안에 있을 시절, 한국에서는 중학교 1학년 때 교육과정 안에서 영어 과목을 처음 만났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과서 영어와 입시 영어를 배웠고, 대학을 다니면서 영어 교양 과목을 수강했다.
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한동안 새벽에 영어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영어가 대세인 한국사회의 조류에 휩쓸려 입에서 자연스러운 영어가 흘러나올 수 있는 수준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경은 현실이 되지 못했고, 결혼과 육아로 영어에 대한 동경마저 사라졌다.
남편의 발령 덕분에 미국에 와서 한동안 신나게 영어를 배웠다.
미국에서 미국 원어민들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조만간 입과 귀가 열리고 이민 1.5세들처럼 미국 사람스러운 영어를 하는 날이 곧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에 살아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영어 쓸 일이 없을 만큼 한인들이 많고 한인 마켓까지 있는 지역에 살면서 이곳에서 만난 한국 아줌마들과의 관계만 확장되는 상황에서 영어는 내 욕심만큼 늘지 않았다.
영어에 대한 답답함과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미국 학교에 취업을 하기로 작정을 했을 당시에도, 나의 영어는 미국 마켓에서 찾는 물건에 대해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질문하고 도움을 받을 정도까지의 수준이었다.
처음 동네 학교에 취업을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영어를 잘하나 보다. 대단하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내게 숨겨진 영어 실력이 있을 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내 영어의 수준을 정직하게 알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는 너무도 멀고 부족한 단계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어설프고 걱정되는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당시의 나는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가서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돌고 돌았지만 목마른 내가 직접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 보조교사라는 길을 찾아 나섰고,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미국 학교에서 일한 지 이년 반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나는 내 영어의 부족함을 매일 느낀다.
여전히 영어가 어려워서 가끔은 답답하거나 속상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내 수준의 영어가 문제가 되지 않고 미국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므로 주어진 "한국인 특유의 사람 눈치보기" 덕분이다.
미국에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얕고 넓게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사람들의 눈치 보기와 처세 능력이 상당히 고단수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나는 그다지 눈치가 빠르거나 처세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 미국 문화권을 비롯해 다른 나라 문화권에서 자란 동료들과 지내다 보니, 내게 있는 한국인들의 사람 눈치 보기가 남들에 비해 월등하며 그것이 긍정적인 처세의 힘으로 발휘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임이나 다른 교사들이 지시하거나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할 때 그들의 필요와 요구를 이해하여 반응하는 것도, 웅얼거리며 말해서 알아듣기 힘든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여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 우리 반 보조교사들 중에 내가 제일 빠르다.
게다가 교사로 근무했던 경력과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세월 덕분인지 아이들의 상황에 대한 대처법도 제법 그럴듯하다.
아이들의 특성과 대처법을 알아내고 동료들과 공유할 때면 동료 보조교사들이 종종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의 한국인 특유의 빠른 눈치 채기와 인생에서 배운 처세 능력에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물론 아무리 눈치를 열심히 보고 재빠르게 동료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챈다고 해도 실수할 때가 있다.
나의 엉뚱한 반응이나 대답에 담임이나 다른 교사들이 '이건 뭐지?' 하는 듯한 반응을 보일 때면, 내 눈치능력으로 채워지지 않은 부족한 영어를 자각하게 된다.
그럴 때면 정직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다시 알려달라고 말한다.
나의 생뚱맞은 반응과 엉뚱함은 회자되어 동료들과 농담하며 웃는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내 눈치와 처세의 실력을 알기에 무시받기보다 격려받는 경우가 더 많다.
가끔 나의 부족한 영어로 인한 실수를 귀엽다고 봐주는 동료들까지도 있다.
미국인들 중에도 남다르게 눈치가 빠르고 노련한 대처능력을 가진 이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비교해볼 때 한국인의 눈치보기와 한국인 특유의 처세술은 세계 상위 수준일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매우 편협한 통계에 의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오늘도 절반은 정확하게 알아듣고, 남은 절반의 절반은 대강 이해한 후, 나머지는 눈치로 파악하면서 사고 치지 않고 무사히 학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물론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의 대부분은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대화였다.
학교의 좋은 점은 새 학기에 바짝 귀를 쫑긋하고 들어 놓으면 남은 학기 내내 비슷한 패턴이나 유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어설픈 영어를 극복해주는 재빠른 눈치와 처세 능력을 가진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걱정되는 영어로 미국에서의 취업을 꿈꾸는 한국사람들이 있다면, 걱정 마시라.
우리에게 주어진 한국인 특유의 눈치보기의 능력과 처세술은 언어의 부족함을 재빠른 순발력과 노련한 실행력으로 채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