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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23. 2019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산타할아버지였던 시간이 그립다.

옳은지 아닌지 헷갈리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적인 인물 이야기 1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 가신대 ~




굴뚝이 있는 집에 사는 미국 아이들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직접 찾아갈 것 같은 환상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교회에 가서 산타할아버지 복장을 한 교회 선생님을 통해 선물을 받으면서 좋다고 신이 났던 시절이었다.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었음에도 산타할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다녀가시면서 내 머리맡에 책가방을 두고 가셨다.

성탄절 아침에 부스스한 눈으로 머리맡의 선물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뜯은 포장지 안에서 책가방을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민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던 나를 위해 부모님께서 처음 산타할아버지 흉내를 낸 날이었다.

그 가방을 안은 채, 어젯밤에 산타할아버지는 어디를 통해 우리 집에 들어오셨는지 궁금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나는 부모님이 나를 속였다는 생각보다 새 책가방을 안은 채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갔다는 환상에 빠졌던 그 성탄절 아침이 준 행복감을 더 크게 기억했다. 




결혼 후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좋았던 것 중에 한 가지가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인 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꿈과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의미 이면에 숨겨진 산타라는 존재의 상업성과 산타를 이용해 아이들을 속이고 어린이들을 조종하려는 어른들의 어두운 내면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맛보았던 그 성탄절 아침의 환상적인 기쁨을 내 아이들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산타할아버지 흉내를 내기 위해 아이들이 갖고 싶어 했던 선물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할 만한 곳에 선물을 꼭꼭 숨기면서 아이들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숨겨둔 선물을 몰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아두는 순간 느껴지는 짜릿함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내복 바람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앞으로 달려가 선물을 뜯고 환호할 아이들 모습을 그려보며 설레어 잠들기까지 한참 걸리곤 했다.


큰 아이가 1학년이 되었을 때,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다가 우리 아이보다 영리하고 세상 물정에 먼저 눈을 뜬 친구로부터  산타할아버지가 조작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큰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다섯 살 난 동생에게 아빠와 엄마가 산타할아버지인 척하는 거라고 산타의 존재를 폭로하였고, 더 이상 우리 집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환상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날, 앞으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지 않을 두 아이보다 내가 더 맥 빠지고 서운했다.

산타할아버지 흉내내기에 전력을 다하며 더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아침을 기다렸던 그 즐거움을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거라는 실망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이야 어떠하든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기업들의 매출에 기여하며 아이들이 우는 것을 그치게 하고,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존재해온 것은 사실이다.

어찌 보면 북극에 살고 있는 산타할아버지가 내가 착한지 네가 나쁘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도청기나 몰카를 설치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에 있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한단 말인가?

마치 감시하듯이 누군가 나의 행실을 주시하면서 수행 평가하듯이 어딘가에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산타할아버지는 옳지 않다.


하지만 두 아이가 철 모르던 시절을 돌아보면 산타할아버지는 옳았다. 

산타할아버지를 흉내 내며 선물을 몰래 숨겨두던 시간들의 설렘과 성탄절 아침이면 포장지를 벗기는 아이들의 빛나는 얼굴을 보며 달콤하고 행복했던 그 순간은 아이들과 내 인생에 좋은 추억이 되었다.

물론 산타클로스의 진실을 알고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에게 다소의 배신감을 느끼는 것으로 그 추억의 아름다움은 끝이 났지만 말이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딸이 선심을 쓰듯 말한다.

"그래도 엄마는 산타클로스 역할 잘했어. 우리가 깜빡 속아 넘어갔으니까. "




산타가 옳든 옳지 않든 다시 두 아이가 산타의 진실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산타를 흉내 내는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두었다가 몰래 선물을 사서 아이들이 없는 틈에 포장을 하고 아이들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둘 것이다.

선물을 포장하면서, 선물이 숨겨진 곳을 지날 때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선물을 꺼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아두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릴 것이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께서 우는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대~”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기쁨과 흥분에 휩싸여 선물을 들고 집안을 뛰어다닐 아이들을 볼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잠이 들 것이다.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 가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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