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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an 21. 2020

고맙기는커녕 괘씸한 독감에 걸렸다

독감 유행이 고마웠던 3번 방 보조교사 아줌마의 변덕 이야기

Flu Shot을 맞으라는 안내문과 이메일을 받기 시작하면 독감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찬바람과 함께 찾아온 독감이 유행할 기미가 보이면서 나는 특별히 더 개인 위생과 몸상태를 챙겼다.

온갖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가 사방에 떠다니는 초등학교, 그것도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는 기본 예절쯤은 가뿐히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남다른 꼬마들이 사는 3번 방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이 도는 덕분에 찬바람과 함께 3번 방 꼬마들이 돌아가면서 결석을 하고 있다.

덕분에 3번 방은 조금 평화로워졌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다소 수월해졌다.

아픈 아이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은근히 독감 시즌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재채기가 나고 목이 컬컬하더니 목이 부은 느낌과 함께 몸살기가 느껴지지고 콧물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아뿔싸!

3번 방 꼬마들의 온몸을 누비던 바이러스가 드디어 내 몸에 침투한 것이다.

독감에 걸리지 않으려고 손도 더 열심히 닦고 나름 컨디션 조절을 하며 버티던 나의 노력은 3번 방 꼬마들이 개의치 않고 마구 퍼트리고 다니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수시로 면전에 대고 재채기는 해대던 헤든과 일리, 교실을 누비고 다니는 것을 붙잡았더니 내 얼굴에 대고 "부~"하며 침을 튀기던 이디, 누런 콧물을 닦던 손으로 의자며 책상을 문지르던 샤먼과 코인, 내 목에 달린 그림카드를 만지며 기침을 하던 에빗 그리고 감기 걸린 채 교실을 돌아다니던 나나와 히나.......

주말 내내 몸살감기로 고생을 하면서 나에게 바이러스를 선물했을 꼬마들을 떠올려보니 바이러스 감염의 경로 리스트는 끝이 없다.

감기몸살을 속히 떨치고 나에게 바이러스를 선물한 3번 방 꼬마들에게 복수하러 3번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말 동안 감기 몸살에 좋다는 것은 다 찾아 먹으며 침대에 드러누워 지냈다.

정신력의 힘인지 대체의학의 힘인지 아니면 Flu에 확실히 Strong 하다고 광고하는 약 덕분인지 우려했던 것보다 빨리 감기몸살 기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 가서 3번 방 꼬마들의 재채기와 기침을 지혜롭게 막아내리라는 생각과 함께, 어떤 잔소리로 요 꼬마들에게 복수를 할까 우스운 고민을 하며 아직 덜 떨어진 감기 기운을 털어내며 출근을 했다.

그런데......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이런! 아이들이 등교하는 현관 앞에 서 있어야 할 Ms. S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3번 방의 나와 같은 Full Time 보조 교사 Ms. S가 감기 몸살로 결근을 한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몫을 두 사람이 감당하며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첫 쉬는 시간 전에 임시 보조교사가 오긴 했지만 Ms. S의 몫까지 더 분주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3번 방 꼬마들은 나에게 바이러스만 준 것이 아니라 동료 교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두배로 정신없는 하루까지 선물해주었다.


사실 이런 불평도 억지일 뿐이다.

누렇다 못해 초록빛이 도는 끈적한 콧물이 줄줄 나고 주체하기 힘든 재채기는 수시로 터지며 참을 수 없이 기침이 나는데 어쩌겠는가?

Ms. P가 도끼눈을 뜨고 입을 가리고 하라는 잔소리를 하기 전에 이미 재채기와 기침을 해버린 것을 어쩌란 말인가?

온몸으로 뿜어 나오는 바이러스를 3번 방 이곳저곳에, 그리고 교사들 면전에 뿌려대는 것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에는 너무도 장난꾸러기인 아픈 다섯 살짜리 꼬마들의 잘못이겠는가?

그래, 이맘 때면 꼭 찾아오는 독감 바이러스 녀석이 나쁜 거지.


결국 찾아온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 나는 혹독한 몸살감기로 주말 내내 고생하고, 몸살감기에 걸린 동료의 몫까지 감당하느라 유난히 정신없는 월요일을 보내야 했다.





"Don't be sick!"

요즘 3번 방 교사들이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나누고 있는 인사다.

네가 아프면 내가 힘들고, 내가 아프면 네가 힘든 걸 알기 때문에 서로 아프지 말자고 파이팅하는 것이다.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독감 유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 모두 "Don't be sick!"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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