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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an 31. 2020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건 아직은 내 착각?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에 대한 무지와 차별, 그 아픈 현실에 대하여 1

지구에서 땅 크기로는 100위 안에도 못 드는 작은 나라지만 성장과 발전의 상징인 대한민국.

낯설게 느껴지는 Republic of Korea라는 정식 명칭을 가졌지만, 우리는 쉽게 South Korea라고 부르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미국에 오기 전,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고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도 많아졌으니 우리나라를 모르는 미국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의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한국보다 100배는 큰 미국에 살면서 깨닫고 있다.





오늘 학교에서 만난 백인 동료가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중국인이니, 일본인이니?"

내가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러냐고 하더니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동료가 본 영화는 바로 요즘 우리나라의 자랑거리로 떠오르는 영화, 'Parasite(기생충)'이었다.

동료는 정말 한국 사회가 그러냐, 자기는 한국은 모르지만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웃기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지만 좋은 영화였다며 자신만의 영화 평론을 늘어놓았다.

동료와 함께 그 영화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면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단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깨가 우쭐해졌다.

동료는 이제 내가 한국인임을 기억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개봉되었을 때, 한국 사회의 단면에 대해 허를 찌르는 풍자와 해학 그리고 다소 충격적인 장면들로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연이어 들려오는 국제적인 수상 소식으로 더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기생충'은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각종 영화제에 초청을 받으며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얼마 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후, 최근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앙상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영화제의 상을 휩쓸면서 미국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해서인지 '기생충'은 미국의 많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가 인정을 받고 주변의 미국 영화관에 'Parasite'라는 이름으로 걸린 우리나라 영화를 보러 오는 미국 관객들을 보며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미국 학교에서 임시교사로 일하던 해에 우리나라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고등학교로 출근한 날, 고등학생들이면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 소개를 하면서 곧 동계 올림픽이 열릴 나라, Korea에서 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한 학생이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었다.

당연히 남한이라고 하자 다른 학생이 대통령이 '김정은'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김정은'은 북한 대통령이라고 하자 학생들은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배가 산으로 가겠다 싶어서 진정시키고 담임교사가 남겨둔 학습지를 나눠주며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미국은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적은 나라이긴 하지만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심지어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남한의 대통령인지 북한의 대통령인지를 모른다는 것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워낙 한국인이 많으니 제법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미국인들도 많지만, 한국인이나 한국을 경험해 본 이들이 아니면 여전히 한국이 중국의 속국쯤 되는 줄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남한에 대해 여전히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반면, 오히려 문제를 일으켜 뉴스에 자주 나오는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한국의 대통령은 몰라도 북한의 대표인 '김정은'의 이름은 안다.




빌보드에서 3회 연속 수상을 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BTS의 명성은 이제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미국인들 중에도 BTS나 방탄소년단이라고 적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가 있고, 우리 딸 미국인 친구들 중에도 한국어는 못해도 방탄 소년단의 노래는 한국어로 부르며 방탄소년단의 구즈를 사 모으는 방탄 광팬들이 꽤 있다.

지나다가 BTS 팬임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다니는 이들을 길거리에서 만날 때면, 내가 방탄 소년단과 같은 한국인이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BTS의 위력도 방탄 소년단의 팬과 그들의 가족에게만 발휘될 뿐 관심 없는 이들은 전혀 알지를 못한다.

미국에서 BTS 콘서트 표가 매진되었다는 뉴스가 나가도 그것은 한류와 한국 드라마와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얼마 전 동료들에게 BTS이야기를 꺼냈다가 '그게 뭐지?'라며 처음 듣는다는 그들의 표정에 뻘쭘해지기도 했다.




내가 동료가 영화 '기생충'을 봤더라는 이야기를 하니,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주말에 한국 영화 'Parasite(기생충)'를 보았다며 반 학생들에게 좋은 영화라고 추천을 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많은 반애들이 "한국에서도 영화를 만들어? 몰랐어!"라며 놀라더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많은 애들이 "우리는 한국 영화에 관심 없다. 볼 생각 없다."라며 다소 적의적인 반응을 보여 딸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얘기에 나도 마음이 언짢아졌으니 교실에서 주변 아이들의 반응을 직접 들은 딸의 기분이 어떠했을지는 가늠이 되었다.

딸이 다니는 학교는 아시안이 10% 이상은 되는 학교임에도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놀랄만한 일일만큼 한국은 여전히 뒤떨어진 존재인 것이다.




세계정세와 다른 나라에 관심이 있고 다양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경험한 미국인들 중에는 나보다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미국인도 있다.

게다가 내가 아는 어떤 미국인은 한국 연예인 팬미팅에 가려고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한국에 다녀올 정도로 열성이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에 가보는 것이 꿈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미국 구석구석에서 살고 있는 보통의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무시될 정도로 힘없고 별 볼 일 없는 나라인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가졌던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 그리고 눈부신 경제 발전 같은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가치는 우리나라보다 100배쯤 크다는 미국에서는 별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느낀다.

한국인뿐 아니라 다양한 아시안들이 많이 사는 지역도 이러하니, 한국인이 거의 없는 드넓은 미국의 어디쯤 사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힘도 없으면서 자기 나라를 귀찮게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나라 감독이 만든 영화 덕분에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우쭐했다가, 영화도 만들 수 있는 나라인 게 놀랍다는 고등학생들 이야기에 바람이 빠져 자부심이 납작해진 하루였다.

덕분에 내가 알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위상은 실로 착각이었고, 우리나라보다 100배는 큰 미국에서 한국인의 기세를 펴고 살기는 아직 멀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한국인인 것이 마음 아프기도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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